오늘도 불안의 파도가 나의 밤을 덮쳤다.

by 서대문구점

책상 위의 스탠드 불 빛 하나로 노르스름한 방. 시계는 익숙한 새벽 세시를 가리킨다. 불현듯 나를 좀먹는 공포감이 또 다시 찾아왔다.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잠갔다를 수십 번, 인스타그램의 스토리와 피드를 몇 번씩 다시보고, 유튜브에서 내 정신을 아득하게 할 최적의 콘텐츠를 찾는다. 그나마도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다른 영상으로 점프. 나를 갉아먹는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네 녀석은 시간을 태우기로 마음 먹었나보지. 그렇게 하염없이 시간을 태우고 나서야,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나를 붙잡고 묻는다. 너를 불안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찾아라, 그러나 그마저도 얼마 가지 못해 다시 불안의 세계로 회귀한다. 인생은 회전목마라더니, 그렇게 몇 바퀴를 돌고 나서야 초췌해진 나를 거울 앞으로 끌고온다.


어디 보자. 백 패스할 곳 없는 내 인생이 섬처럼 보인다. 이 섬 가운데는 매번 장대하게 쌓아두지만 파도 한 번에 녹아내리는 얄팍한 모래성이 하나 있다. 스티로폼 다리 위에 올라선 듯 다리가 후들거린다. 점점 삶이 복잡계 수준으로 얽혀가는 듯 하다. 어느 날엔 '백패스 할 곳이 없다'는 대목에서 외로움이 밀려와 발버둥 치며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는데, 오늘은 무사통과라니 다행이다.


요즘 은행 어플리케이션들은 앞다투어 자사 고객들을 대상으로 추출한 데이터베이스로부터 내 또래들 중 내가 어느 곳에 위치해있는지 평균값을 계산해준다. 그 평균의 기준은 다름아닌 재정 상황, 나의 신용도, 연봉 수준, 소비 수준으로 죄다 숫자로 귀결된다. 몇 가지 버튼만 누르면 자비란 없는 숫자 재판관들은 현재 나의 평균 위치를 선고한다. 너는 평균 이하라고. 관리가 필요하다고. 평균에 목메는 우리의 시스템이 이렇게나 나에게 잔인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숫자였지만 오늘처럼 물살에 마구 휩쓸리는 날엔 생살이 벗겨진 피부에 물따귀를 날리듯 따갑다 못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어떻게든 나를 평균 이상으로 올리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아지는 밤이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모두 동원해서 고민의 절구통에 들이붓고 마구 빻는다. 금돈이 나오는 절구를 빻는 동화 속 가난한 형제처럼. 외주를 받을 수 있게 포트폴리오를 만들자, 새벽에 운동 겸 우유를 배달할까, 도움이 될만한 어른들을 찾아볼까, 질문으로 수를 놓다 문득 내 배낭에 담겨있는 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내가 행하고 있는 나의 노력들을 바라본다. 회사, 개인 프로젝트, 시민기자 투고에 틈틈이 하는 운동까지. 지하 14층까지 뚫고 내려가는 나의 자책에 브레이크를 잡는다. 이미 일주일이 빠듯한데 대체 무얼 더 채워 넣으려고 이토록 애를 쓰는지. 잠을 대체 얼마나 안자려는 것인지, 너의 육체를 소홀히 다루다가 병이나고 싶은 것인지. 멈추고 나니 섬 아래에서 한 줄기 생각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유한다. 불안의 횡포 가운데 하나가 나의 현재 상태를 기억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란 걸.


자책의 밤으로 쥐어뜯는라 풀어해친 잠옷 단추를 채우며 다짐한다. 결국 하루하루 주어진 것을 완벽히 해내는 것부터 해야겠다고. 회사에서 주어진 콘텐츠를 발행하고 취재함에 있어 소홀한 마음을 두지 않고, 서대문구의 아름다운 가게를 취재하기 위해 마을을 산책하고 사장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을 멈추지 않으며, 클라이언트가 존재하는 글쓰기 연습인 투고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현재의 상태를 경시하면 미래는 반드시 나를 배반하니까. 내일 일어나서 한눈팔지 말고 다시 나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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