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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03. 2018

누구나 가끔 그렇지 나도 그렇고

- 자기치유의 글쓰기

최근 마음에 병이 조금 생겼다. 깊은 우울과 불안에 자주 휩싸인다. 진지하게 병원에 가볼까도 여러 번 고민했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아볼까 하고. 아직 병원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대학원에 가거나 일을 할 때를 제외하면 집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과 연락도 거의 하지 않고, 비어있는 시간에는 영화만 보면서 지냈다.

5월 한 달 동안에는 32편의 영화를 봤다. 하루에 한 편씩 꼬박 보았고, 주말에 두 편을 본 날도 있었다. 영화를 보고, 그 세계 속에서 무언가 생각하고 느끼다가 빠져나왔다. 여백의 시간, 할 일을 처리하다보면 하루가 그냥저냥 흘러갔다.     

오늘은 길을 걷다가, 문득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고민상담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구나. 내 진짜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해본일이 없었던 것 같다. 고민상담 비슷한 걸 몇 번 해본적은 있지만 그건 대외적인 흉내에 비슷했다. 적당히 분위기의 농도를 맞출만한 대중적인 고민 같은 거. 진짜 고민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생각의 힘을 믿는 편이기도 하고, 사실 남들이 내 고민에 관심 있을 거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잘 안했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조언을 구하고 싶을 때, 나의 고민을 타인이 나에게 묻는다고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았다. 내가 너무 외로워서 힘들면, 누군가 나에게 외로워서 힘들다고 털어놓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에게 해줄 말을 천천히 고민했다. 그리고 그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미래에 대해 불안할 때는, 미래가 불안하다며 후배가 나에게 묻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후배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 줄까 고민하고. 그렇게 떠오른 말을 나에게 해주었다. 내담자도 나고, 상담자도 나였다. 나에게 이런 자기상담은 오래된 습관이다. 글을 쓰는 건 자기상담의 한 종류이기도 했다.      


화도 잘 내지 않고 살아왔다. 나는 화내는 법도 잘 몰라서, 약간 학습하다시피 화내는 법을 익혔다. 부모님께 화를 내본 적도, 반항해본 적도 없다. 어려운 형편에 반항까지 해서야 되겠냐는 생각이었다. 친한 친구들이나 학교 동기들에게나 몇 번 짜증 비슷한 화를 내보았는데 그 외에는 화를 내본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렇게 혼자 속으로 자꾸 몰입하다보니까 문제가 생긴 모양인지, 요즘에는 많이 힘들었다. 평소에 너는 뭐가 그렇게 늘 좋아서 웃고 있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최근에는 웃는 빈도도 많이 줄었고, 웃을 일도 많이 줄었다.      


늘 괜찮아야 한다는 어떤 마음가짐이 강박처럼 있었던 건 아닐까. 세상의 자질구레한 감정에서 늘 초연한 것처럼 행동했더니, 늘 괜찮은 척 하며 살아왔더니 이번에는 조금 뭉친 것 같다. 뻐근한 근육처럼 마음이 뭉쳐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조금 유치하게 신경질도 내보고 싶었구나. 나에게 말을 거는 심정으로 쓴다.    

  

나는 생각의 힘을 믿으니까. 혼자서 감정을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또 어찌어찌 넘어갈 것을 안다. 감정은 늘 일시적이고, (이번은 조금 아프게 길지만) 작은 계기에도 늘 극복의 가능성이 숨어있으니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결국 나는 또 괜찮아질 것이다. 이런 우울과 쓸쓸함은 인생에서 누구나 겪는 마음의 굴곡이다. 라고.     

오늘도 자기상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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