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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08. 2018

노란 꽃은 노란 꽃이 아니다

- 색의 원리

색이라는 것은 반사된 빛이다. 빛이 어떤 사물에 부딪힐 때, 흡수되지 못한 색은 그대로 튕겨져 나가는데 그 빛의 파장을 우리는 색이라고 한다. 세상에 색을 가지고 있는 물체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색은 고유한 성질이라 할 수 없다.      


우주 만물은 수많은 빛의 파장 중에서 흡수한 색을 띠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흡수하지 못한 색을 띤다. 노란 꽃이 있다면, 그 꽃은 유일하게 노란색을 흡수하지 못하고 튕겨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계속 노란 꽃을 노란 꽃이라고 불러도 될까. 채 소화하지도 못하고 반사시킨 색으로 그 꽃을 부를 수 있을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때였다. 나보다 두어살 쯤 어리던 여자 동료. 얘기를 자주 해보지는 않았지만 말할 때마다 나는 그 친구의 깊은 우울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주 띄엄띄엄 알게 된 것이지만 어릴 때부터 가정환경이 아주 불우하고, 아버지에게는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하고, 친구들에게도 여러 번 배신당한 전력이 있었다. 이를 금세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너무나 밝고 명랑한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거의 습관적으로 웃었다. 나는 그 친구 앞에만 가면 내가 정말 재미있는 사람인가 하고 자존감이 올라갔다. 어느 날은 농담도 아니고 그냥 뭔가를 질문했는데, 그 녀석이 웃었다. 알고 보니 내말의 절반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그냥 웃는 것이었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그러했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 친구를 티 없이 밝은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 아이를 유심히 보면 혼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끙끙 앓고 있었는데 결코 바깥으로 그 우울을 표출하지 않았다. 마치 혼자서 은밀하고 커다란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처럼 그랬다. 그냥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좀 좋지 않네요.’와 같은 말을 연습해보지 않은 것도 같았다.      


그걸 알고 난 다음에는 오히려 그 친구를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그가 마냥 밝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 늘 밝은 체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더 눈치를 보게 되는 것이었다. 짐짓 자신의 속내를 흘리며 눈치 보게 하는 고단수가 아니어서 나는 어떤 연민과 존경 비슷한 마음으로 그녀를 대했다.      


말하자면 노란 꽃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에게 도통 어울리지 않는 색을 흡수하지 못하고 바깥으로 튕겨내는데, 그 때문에 너무나 노랗게 보이던 사람. 때로는 사람의 모습이 색의 원리와 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내면과 반대되는 색을 띠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또한 너무 밝다는 말과, 너무 어둡다는 말. 불필요하게 유쾌하다는 말과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말을 다 들어보았는데, 그건 아마 어떤 시기마다 내가 소화하지 못하는 색을 과도하게 튕겨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그야말로 자신의 ‘빛’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내면과 반대되는 ‘색’으로, 숨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빛을 다 더하면 흰색이 되고, 색을 다 더하면 검은색이 된다는데. 그래서 튕겨낸 색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의 분위기가 어쩐지 자꾸만 어두워졌던 것이 아닐까. 뒤늦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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