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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15. 2018

이토록 따뜻한 ‘선택장애’

- 망설임에 대하여

결정을 빨리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건 스무 살 무렵의 어느 지하철에서부터였다. 아직 MP3에 음악을 넣어 다니는 것이 익숙하던 시절, 매일 듣는 노래가 자꾸만 반복되니까 지루했다. ‘또 이 노래야.’ 하면서 열 곡 정도를 연속해서 넘기다보니까 흥미가 확 떨어졌다. 마침 2호선 전철이 한양대를 지나면서 지상으로 올라온 참이어서 이어폰을 자연스레 빼고 창밖의 풍경을 구경했다. 어딜 가는 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늘이 맑았던 것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하철의 소음이 잔잔하게 깔리던 그 곳에서 우연찮게 옆자리에 앉은 두 여성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귀라는 것이 입과 다르게 열고 닫을 수 없는 기관이다 보니 듣고 싶지 않아도 그들의 대화는 자꾸만 들려왔고 나도 모르게 신경이 갔다.     


“식당에서 음식 못 고르고 계속 물어보는 거야.”
“아 진짜 답답해!”      


말하자면 그들은 험담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지난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가 그 주인공이었다. 마침 내가 듣게 된 순간에는 결정을 빨리 못 내리는 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카페에서도 메뉴판만 한참 본다는 둥 음식을 빨리 고르지 못한다는 둥 여러모로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괜히 민망해져서, 나도 혹시 그렇지 않은가 잠깐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마침 스무 살이 된 해였으니 곧 있을지도 모르는 소개팅에 대비해야했다. 본인들은 몰랐겠지만 어느새 나는 학생의 자세로 대화를 엿듣고 있었고, 그 대화를 계기로 빠른 결정의 남자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날부터 두 달간은 빠른 결정의 시기였다. 식당에서도 나는 먹을 음식을 누구보다 빨리 고르고 기다렸다. 카페에서도 이변이 없는 경우에는 그냥 카페모카를 마시기로 했다.(아메리카노 못 먹던 시절.) 영화를 볼 때도 그냥 느낌이 오는 대로, 시간이 가까운 대로 빨리빨리 결정했다.      


결정을 빨리 하고보니 오래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됐다. 대충 골라도 식당의 음식은 웬만하면 맛있었고, 영화는 내가 먼저 골라도 의견이 맞지 않으면 금세 수정이 가능했다. 불필요하게 생각할 시간을 줄이니까 마음도 훨씬 편하고, 조금 쿨 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먼저 고르고 나니 여유도 생겨서 고민하는 친구들에게 빨리 좀 고르라고 면박도 줄 수 있었고, 대신 골라주기도 하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상황이 많이 생겼다. 결정을 빠르게 한다는 건 꽤 좋은 습관이구나. 그런 깨달음을 일찍 얻은 덕에 아직도 나는 결정이 빠르다.     


그런데 아직도 선택장애로 난처할 때가 종종 있다.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친구들과 함께 술집에 갈 때라든지 어떤 모임에서 같이 밥을 먹을 때. 그럴 때는 선뜻 선택하기가 참 난감하다. 서로서로 눈치를 보느라고, ‘전 다 괜찮아요.’를 남발하다가 아무도 원치 않는 메뉴를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있었던 어느 저녁식사를 떠올려보면 이렇다. 음식은 뭔가 맛이 없어서 다들 만족스럽지 않은 기색으로 식사가 진행되고, 누군가 ‘사실 이거 별로였어요.’라는 말을 하고, 뒤늦게 ‘아 저도요.’ 하는 말이 나왔다. ‘왜 아무도 싫다는 말을 안했지?’ ‘다들 눈치 보느라. 하하하.’ 뒤늦게 터져 나온 성토는 그 시간의 대화주제가 되었다. 한 끼 식사가 대수라고, 별 큰일도 아니었지만 썩 달갑지도 않았다.     


저번 주에는 친한 동아리 후배들과 밥을 먹으려고 신촌 명물거리를 몇 바퀴나 돌았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으로 마구 수다를 떨면서, 신나는 기분에 깔깔대며 걸었지만 선뜻 식당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고기 구워먹으면 더우려나. 치킨을 밥으로 먹기는 좀 그런가. 곱창은 냄새 배니까. 피자도 좀 그렇지. 국수 먹긴 좀 그렇고. 넷이서 각자 서로의 눈치를 보는 방어적인 말로 중얼거리면서 같은 골목을 세 바퀴나 돌고나서야 우리는 닭갈비집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심사숙고 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평범한 가게였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그토록 한심하고 답답한 방황의 길이 그렇게나 좋았다. 문득 가슴 한 쪽이 따뜻해지는 느낌. 나는 정말 아무래도 좋은데, 혹시 누군가 안내키는 메뉴를 저녁으로 먹게 되지는 않을까. 각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져서, 찝찝한 습기가 피부에 달라붙고, 더운 실외기 바람을 드문드문 맞아가면서도. 기분은 몽글몽글했다.      


다수가 모여 결정하지 못하는 망설임은, 어쩌면 책임회피가 될 수도 있만 오늘만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싶다. 그 망설이며 뱅뱅 도는 길은 서로의 시간과 취향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아닐까. 나보다 남이 커질 때만 그렇게 숙고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 ‘선택장애’는 호탕하고 강단 있는 카리스마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배려의 증거라고 해두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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