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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29. 2018

사랑과 알콜의 공통점

- 술은 사랑의 비유일까

어젯밤을 짤막하게 설명하면서 글을 시작하기로 한다.


일과를 마치고 방에 불을 껐다. 컴퓨터로 영화를 틀어놓고 가만히 보고 있는데, 어쩐지 조금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맥주만 눈에 보였다.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서 맥주 한 캔을 마시면서 그렇게 영화를 끝까지 봤다. 시시한 사랑이야기. 영화는 그저 그랬고, 맥주 때문에 차라리 좋은 밤이었다.     


피곤했는지, 맥주 한 캔에 몸이 나른해졌다. 눈이 반쯤 감기고 몸엔 열기가 돌았다. 내 책상 뒤에는 침대가 있는데, 미끄러지듯이 침대로 점프했다. 맥주 한 캔이 사랑처럼 포근하네. 그런 생각과 함께 정말 스르르 잠들었다.

    

대학교 다닐 때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후배에게 오늘 전화가 왔다. 조금 당황했는데, 반가운 척하면서 받았다.

“형도 아시다시피 저 아싸잖아요. 아는 선배도 없고 그나마 형밖에 연락할 사람이 없어서요.”

졸업을 앞두고 뭘 묻겠다는데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 처지라 별 도움은 되지 못했다. 그렇게 통화는 어영부영 마무리되는 그림이었다.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눌만한 사이도 아닌데 후배 녀석이 갑자기 조금 사적인 얘기를 꺼냈다.

“조금 뜬금없는 얘기지만 저 헤어졌어요 형.”

여자친구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2년 사귄 애인과 얼마 전 헤어졌다고 했다.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는 것 같았다. 더듬더듬 풀어낸 사연을 듣고 보니 조금 안쓰러웠다. 많이 외롭고 힘들어 보였다.


그냥 얘기를 들어주고, 내 생각을 조금 보태고. 마른 낙엽 같은 위로 몇 마디를 건넸다. 언제 한 번 보자는 형식적인 인사와 함께 통화가 끝났다. 통화 시간을 보니 30분이나 지나있었다.      


치우지 않은 맥주 캔이 여전히 책상 위에 있었고,

나는 문득 사랑과 알코올이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싶어 마신다. 마시고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럼 더 마신다. 마실수록 더 잘 들어가고, 조절이 어렵고, 몸도 못가누고 정신도 못 차린다. 영원할 것 같던 취기가 어느새 그치면, 남은 것은 숙취의 고통이다. 머리가 깨질 듯하고, 속이 메스껍고, 한동안 폐인처럼 비틀거린다. 다시는 술 같은 것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후회는 길게도 안 간다. 시간이 지나면 슬금슬금 술이 고파진다. 같은 잘못을 몇 번이나 반복하고서도, 알콜이 간절히 그리워지는 밤은 자꾸만 있다.      


술 얘기를 적었을 뿐인데, 사랑의 흥망성쇠가 보이는 걸 보면 술은 사랑의 비유일지도 모르겠다.     


이뿐만 아니다. 술의 중독과 사랑의 중독도 닮았다. 술에 자꾸만 노출되면 술에 의존하게 되기도 한다. 중독되면 습관처럼 술을 찾게 된다. 알콜중독자에게는 더 많은 알콜이 아니라 한동안 알콜을 끊는 것이 필요하다. 사랑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새로 포장된 한 병의 사랑이 아니라 사랑 없이도 똑바로 걸을 수 있는 한동안의 금애(禁愛)가 필요한데, 해장술로 숙취를 푸는 사람처럼 새로운 사람으로 이별을 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더 있을까. 그러고보면 술의 종류가 다양한 것처럼 사람과 사랑의 종류도 다양하다.     


알코올은 다 같은 알코올인데, 모습도, 도수도 천차만별이듯 사랑도 그렇다. 각기 다른 성격, 외모,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우리는 사랑을 한다. 맛도 다르고, 취하는 속도도 다르다. 숙취의 형태도 다르다. 하지만 참이슬이든 발렌타인이든 잔뜩 먹고 취했을 때는 별 차이 없다.      


취향이 점점 확고해지는 것도 닮은 점이다.      


시작할 때는 소주도 먹고 칵테일도 먹고 맥주도 먹고 이것저것 별 의심도 없이 먹다가 나중에는 취향이 보통 굳어진다. 소주파는 소주만, 맥주파는 맥주만, 양주파는 양주만,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술을 끊는다.     


타인이 취한걸 보면 한심할 때가 많은데, 내가 취하면 실실 웃게 된다. 취한 사람은 보통 부끄러움을 모른다. 용기도 마구 생긴다.      


시작할 즈음에는 실수가 많다가 점차 능숙해진다, 차츰 조절을 한다. 다음날을 생각하지 않고 퍼마시던 사람들도, 몇 번 숙취를 겪고 나면 인사불성으로 취하는 걸 꺼린다.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취하려고 한다. 취기는 언젠가 그친다는 것. 내일도 삶은 계속된다는 걸 깨닫는다.     


사랑과 술은 이렇게나 닮아서, 술은 자꾸만 사랑을 발명하고, 사랑은 술의 힘을 빌려 태어나기도 하는 것일까. 서로 너무나 닮아서 이별의 고통을 술로 잊으려하는지도 모르겠다.   

   

알콜과 사랑의 공통점을 무한히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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