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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해, 어디까지 가는 거야!”
자정이 넘은 겨울 바다는 해로표시등이 몇 개 떠있는 검은 물로 가득 했다. 해변가의 주황색 불빛들이 검은 바다 속으로 스미듯 사라졌다. 우리는 등대까지 걸었다가, 방파제 몇 개를 넘어 해안가의 암벽지대로 향했다. 미영은 신이 난 듯 거칠고 까슬한 돌 위를 촐싹거리며 넘어 다녔다. 등대보다 약간만 내려가 바닷물을 한번 쓸어보려던 나와는 달리, 미영은 자꾸만 멀리 나아갔다. 파도가 없는 조용한 바다였기 때문에 휩쓸릴 염려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여기 봐. 뭐가 움직여.”
“여기 플라스틱 공장 아니야. 바닷가니까 당연히 살아있는...”
그때였다. 거칠은 돌의 표면에 이끼가 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도 전에 몸으로 경험한 미영의 몸이 쭉 미끄러졌다.
내 눈에 그 장면은 슬로우 모션으로 녹화되기 시작했다. 미영은 뒤로 넘어갈 듯 앞으로 미끄러졌다가 나중에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손을 짚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평평한 바위 표면으로 닿았지만 왼손이 모서리를 스치면서 아찔한 상처가 새겨졌다.
으깨졌다고 해야할까. 너덜해진 상처가 잠시 멈추었다가, 이윽고 검붉은 피가 새어나왔다.
그녀를 다시 방파제 위로 올리던 일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는 등대 쪽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서서 떨어지는 피를 보며 어쩔 줄 모른 채 있었다. 일일구, 일일구, 내가 더듬거리며 발음했지만 공황상태였던 우리는 그것이 전화번호라는 것을 잊은 채로 덜덜 떨었다. 우리 중 누군가가, 간신히 119의 번호를 기억해냈고, 더듬거리며 1,,,1,,,9를 입력했다. 막을 수 없는 피는 멈추지 않고 고이고 흘러내렸다. 이윽고 멀리에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불빛이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혼란한 우리와는 다르게 일상적인 표정으로 우리에게 향했다. 손목의 피를 본 후에야 몸놀림이 빨라졌다. 양쪽으로 구급차 뒷문이 열렸고, 앰뷸런스는 지체없이 우리를 싣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응급처치를 마치고 나와 근처 모텔에서 해가 밝기까지 우리는 왠지 서먹해져 말 몇 마디를 나누기 힘들었다.
“소독 잘 해야한대.”
“응...”
“물 닿지 않게 조심하고.”
“응...”
“서울 가면 병원 다시 가보자. 오빠한테...”
“연락할게.”
그녀가 내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그래.”
그녀를 괜히 데려온 거라고 나는 백 번도 넘게 스스로를 질책했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미안했다. 어쩔 수 없었다고, 말릴 새도 없이 까불어댄 건 미영이라고 합리화해 봐도 그녀의 왼 손목에 감긴 붕대를 보면 자괴감에 고개를 들기가 어려웠다. 겨울 바다가 웬 말이냐. 따뜻한 찜질방에서 계란이나 까먹을 것을 무슨 바람으로 겁도 없이 밤기차를 탄 것이냐고 나는 어쩌면 그녀가 다치지 않을 수 있었던 수십 가지의 선택지들을 떠올렸다. 기차에서 내린 후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진정을 해야 했을까. 아니면 등대에서 바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잠을 자러 가야했을까. 머릿속으로 하는 선택지들은 각각의 퍼즐 조각들로 내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녀가 침대 옆자리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나는 머릿속으로 퍼즐 조각들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혼자 이리저리 맞춰보았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해가 밝고 중앙시장에서 유명하다는 집을 어렵게 찾았다. 낡은 간판에는 없어진 구식 영화관에서나 즐겨 쓸법한 글씨체로 황도횟집이라고 적혀있었고, 그 촌스러움이 전통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녀를 따라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촌스러울수록 인정받는 전통있는 횟집에서, 나도 촌스러운 사랑을 해야겠다고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웃었다.
“간판이 촌스러워서가 아니라, 맛있어서라구.”
그녀가 얼굴을 익살스럽게 찡그리며 놀리듯이 말했다.
“회는 어부가 잡아오는 거지 황도횟집이 잡아오는 게 아니잖아. 어부가 잡아온 물고기를 양념도 없이 생으로 먹는 건데 황도횟집이 뭐라구 유명하지?”
“토 달지 마!”
그녀가 숟가락으로 내 이마를 빡.
“갑자기 맛있네. 히히”
그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푸하하 웃어버렸다. 그렇게 시시하게 웃다가 붕대감긴 그녀의 왼 손목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면서 눈에 띄었다. 나는 일순간 표정을 잃고 벙 찐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제발 죽을 사람 보듯이 보지마. 금방 나을거야.”
그녀가 어린애 달래듯 말했다. 하지만 미안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 기차를 탔다. 서울까진 금방이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한 그녀는 기차에서 쉽게 잠들었고.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질 않아 그녀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나는 돌아오는 내내 미안했다.
미안했다.
*
난 잊을 수 없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다. 겨울 바다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병에 걸리지 않고서야, 네가 미영이 아니고서야 모를 리가 없어. 거짓말이야.
“겨울 바다에 가본 적이 없다니. 그럼 그 큰 흉터가 왜 생겼는지 모른다는 말이야?”
나는 납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따지듯이 물었다. 조금 공격적인 말투에 미영은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진짜 모르겠어, 나한테 왜 이 흉터가 생긴 거야? 오빠는 알아?”
미영은 억울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하지만 진심을 담은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우리 만난 지 백 일 무렵에, 크리스마스를 이주 앞두고. 강릉. 기억 안나?”
“오빠 방금도 말했지만 난 겨울바다 가본 일이 없어.”
“같이 갔어 우리.”
“같이 갔어 우리?”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그녀가 물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날을 잃어버렸다. 기억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