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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에 가고 싶어.
나 늘 생각하고 있었어. 하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늘 생각하고 있었다고, 입을 뗀 그녀가 우리가 뜨거웠던 그 때. 12월 그날의 목소리로 말했다.
겨울 바다에 가고 싶다고.
“아무도 겨울 바다에 주목하지 않아. 바다는 마땅히 여름의 것이어야 한다고 내가 읽은 모든 책과 드라마, 영화와 그림에서 말했어. 그래서 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겨울바다 같다고 생각했어. 아무도 나를 찾아와 주지 않을까 하고 겁이 났어.”
미영은 테이블의 주름을 세고 있을까. 테이블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땐 듣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때도 미영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까.
“글쎄. 이터널션샤인 첫 장면은 겨울바다로 시작하잖아.”
겨울 바다가 나오는 영화도 많아. 책도 많고. 내가 말하자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겨울 바다는 외톨이야. 그래서 난 겨울바다가 두려웠어. 벌거벗은 나를 만나러 가는 것 같아서. 한 번도 용기 낸 적 없는 걸. 가본 적 없어.”
나는 핸드폰 버튼을 눌러 시간을 확인했다. 10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우리가 천 구백일 쯤 젊었을 때 겨울바다에 갔던 그 날이 새삼 떠올랐다.
“그럼 가자.”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알 수 없게 발음이 먼저 나왔다. 곧 결혼하는 나의 옛 연인과 함께 겨울바다로 떠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불편하고, 우습게 느껴졌다. 그녀를 위한 마지막 호의로 나는 그녀를 겨울바다에 데리고 갈 결심을 했다.
그녀의 기억을 찾아줘야만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전율처럼 발끝으로부터 몸을 휘감아 정수리까지 순식간에 솟구쳤다. 몸이 잠시 떨렸다.
기차가 덜컹이고, 내 옆에 앉은 미영이 여전히 낯설게 느껴졌다. 같은 공간, 비슷한 시간이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그 장면에서 달라진 우리의 사이만 도드라져 보였다. 그녀는 창가 쪽에 앉아서 내 쪽은 단 한 번도 바라보지 않고, 창밖을 응시했다. 어두운 밤 철길을 달리는 기차는 그렇게 드문드문 멈춰서며 내달렸고 어느 순간 창밖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을 드러냈다. 밝은 기차의 조명 때문에 창에는 거울같이 기차의 내부가 비췄고, 기차 밖의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나란히 앉은 그녀와 내가 앉아있는 장면이 어둠속과 겹쳐 지나고 있었다.
“오빠를 만나기 전에, 그리고 헤어진 후에는 습관처럼 검색창을 열어서 겨울바다 같은 것들을 검색하곤 했어.”
한참이나 말이 없던 그녀는 여전히 창밖으로 시선을 둔 채로 가만히 말했다. 힘없이 내뱉은 발음들은 내 귀로 닿기 전에 떨어질 듯이 힘이 없었고, 난 주워 담듯이 그녀의 단어에 집중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 여러 층에 겨울바다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라. 손가락 절단 같은 거. 검색해봤어?”
미영은 무언가 떠올리는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이었다. 나는 창에 비친 그녀의 눈을 보며 검색창에 손가락 절단을 타이핑하는 그녀를 상상했다.
“아니. 해본 적 없어”
내가 짧게 대답했고, 그녀는 내 대답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자신의 페이스로 말을 이어나갔다.
“손가락 절단을 검색하면,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들의 세계가 나와. 숱한 질문들. 손가락이 절단된 그들의 두려움과 아픔. 막막함이 온통 펼쳐지고 손가락 절단의 전문가들과. 손가락 절단을 치료하는 기관들이 가득해. 말하자면 그 사람들도 겨울바다인거야.”
나는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왼쪽 얼굴과 오른쪽 얼굴. 그 매력적인 비대칭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손이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을 뻔 했고 나는 도둑질을 들킨 범죄자처럼 놀라 손을 내렸다.
“그런 나날들의 반복이었어. 어느 날은 임신 가능성 같은 것들을 검색해본다던가, 치매 치료라던가. 다문화 전형이라던가. 파산 신청 같은 것들. 그러면 신기하게 내 주위에 흔적도 없던, 그런 사람들이 나와. 남자친구와 피임에 실패한 여고생. 치매를 앓는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 생김새와 혈통만 절반이 동남아 쪽인 수험생. 사업에 실패한 가장. 그리고 어딘가에는 내가 있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검색하고 또 검색했어.”
항상 밝고, 자신감이 넘치던 그녀였기에 전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야말로 그녀의 겨울바다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것이 미안했다. 망치로 가슴을 얻어맞은 것처럼 심장이 뛰었다.
미영은 다시 입을 다물고 창밖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소리 없이 앉아서 기차가 덜컹이는 대로 흔들렸다.
“슬슬 졸린 걸 보니 시간이 꽤 지났나 봐.”
저번에도 그렇게 말했어. 하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킬킬거리던 그때의 웃음이 없다는 것이 어색했다.
“거의 다 왔어. 준비해.”
그녀는 졸린 듯이 눈을 비볐다. 기지개를 펴는 그녀를 보다가 흉터자국이 선명한 왼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와 그 흉터를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기차가 덜컹였다. 가방을 챙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강릉. 강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