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Nov 27. 2018

몽연하게 흩어지는,

- 향, 큰아버지

큰아버지가 식도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은 군대 말년에 들었다. 나는 암이라는 단어를 책이나 TV에서밖에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위험한 병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테니스를 진주에서 제일 잘 치시고 미군들과 미식축구하던 추억을 자주 얘기하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병환을 전해듣고는 별 리얼리티도 없었다. 금방 낫고도 남을 만큼 건강하신 분인데 뭘.


전역과 거의 동시에 아르바이트와 연애를 시작했다. 일주일은 그야말로 쉴 틈이 없었다. 휴학계를 내고서는 실컷 일을 하고 데이트를 하다보면 월급날. 그런 한 달이 몇 번이나 반복됐다.   

   

병이 악화돼서 서울에 큰 병원으로 옮기셨다는 말을 전하시며. 아버지는 쉬는 날을 물으셨는데 당시의 나는 쉬는 날이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 휴일마다 만나야 할 사람들과 해야 할 일들이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쌓여있었기 때문에. 이번 달은 좀 어렵고 다음 달 쯤에는 어떻게 시간이 날지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만큼 암은 나에게 철없이 만만한 병이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는데 결국 한 번도 뵙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미루고 미루다가 다음 주에 가기로 날짜까지 정한 다음 날이었다. 출근길에 소식을 듣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와 진주로 향했다. 1주일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1년이 늦은 것이었다. 내려가는 내내 방학숙제를 안한 초등학생처럼 가슴이 뛰었다.      


나는 슬픈 영화나 책을 읽어도 절대 울지 않는데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다. 큰아버지의 사진과 울고 있는 사촌형을 봐도 좀처럼 눈물이 나지 않아서 그냥 덤덤히 서서 문상객들과 맞절을 하고 꺼져가는 향을 때에 맞춰서 새로 피우면서 자리를 지켰다. 사촌형 옆에서 나는 두리번거리며 보이지 않는 큰아버지를 찾았다. 이렇게 중요한 날에 큰아버지는 어디엘 가신거지. 그만큼 실감이 안 났던 것이다.     


그러다 새벽 어느 시간.     


꼿꼿한 몸을 연기로 바꾸면서 부스러지는 향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그건 막을 수 없는 눈물이었다. 나는 헐떡이면서 바닥에 코를 박고 눈물을 쏟아냈다. 분명 방금까지 꼿꼿이 서 있던 향의 몸이 숨을 한번 내쉴 때마다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줄어들다가 어느새 다 타버리고 말았다. 큰아버지도 그러했다.     


향로에서 향은 자신의 몸을 연기로 바꾸고 하늘로 흩어지면서 쓸쓸한 재를 남겼다. 그 몸은 절반은 재가 되고 절반은 향기가 되어 내 옷 속에 깊게 배어들었다. 큰아버지와의 기억도 내 마음 속에 향기롭게 남아있다. 향 하나가 꺼질 때마다 나는 새로 향을 피우면서 큰아버지가 남긴 향기를 떠올렸다. 언젠가 사냥에서 잡아오셨던 꿩고기를 내가 참 잘 먹더라고 흐뭇하게 말씀 하시던 모습과 그 호탕하게 웃으시던 목소리가, 나는 너무 그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는 죽었고 글은 살아있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