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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03. 2018

봄 여름 가을 귤

- 겨울과 귤

겨울을 싫어하는 나에게, 누군가 겨울이 왜 있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한참이나 고민하다가 '겨울에는 귤이 나기 때문에' 라고 대답할 것이다. 겨울이 싫은 이유를 대보라면 나는 몇 가지를 순식간에 댈수 있지만 귤이 싫은 이유에 대해서는 생각해본적이 없다. 손톱이 누래진다는 것 정도. 그런 건 단점이라 하기 어렵다.


귤은 맛있다. 추운 겨울 따뜻한 방에서, 혹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먹는 귤의 맛은 매년 반복해도 결코 질리지 않는다. 여름의 수박도 기가막히게 시원하고 달지만 귤의 새콤달콤한 맛은 입안에서 탁 터지는 식감과 함께 말로 할 수 없는 행복감을 준다. TV나 영화를 보면서 먹으면 숨도 못 쉬게 배불러진 뒤에야 이렇게 많이 먹었나 자각할 수 있을 정도, 귤은 맛있는 과일이다.


맛있는 것 뿐만 아니라 귤은 싸기도 하다. 대학생 때는 거의 내내 자취를 했는데 그제서야 과일이 그렇게나 비싼 줄 알게 되었다. 이천 원이면 라면을 몇 봉지나 살 수 있는데 반해서 사과는 개당 이천원씩 하기도 했으니 사먹을 엄두도 못 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일이 먹고 싶어지면 내심 겨울을 기다리기도 했다. 트럭에 싣고 파는 귤은 삼천 원이면 한봉지 가득 느껴지는 무게감에 손가락을 동원해도 다 못 셀 만큼의 갯수가 주어지는 과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귤을 싫어하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더운 것 보다는 추운게 낫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추운 것 보다는 더운게 나아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둘 모두가 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분명 한 목소리로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귤은 온몸으로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는 과일이다.


사람마다 겨울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는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스키나 크리스마스가 겨울의 중심에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겨울의 발음이 귤과 참 닮았다는 걸 떠올려보면 역시 겨울은 귤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에 나는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


봄 여름 가을,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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