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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07. 2018

사투리쓰고 욕하는 콜센터라니

- 2011년 콜센터 아르바이트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군 휴학을 냈다. 10월에 입대가 예정되어있었기 때문에 딱 세달 정도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있었다. 용돈을 풍족하게 받으며 술 마시러 다닐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대학 동기 L과 나는 같이 일을 구하기로 했다. 시급을 꽤 많이 쳐준다는 공고를 보고 한 아웃소싱회사에 면접을 보러 갔다.     


싱거울 정도로 재미없는 면접이었다. 별 질문도 없이 바로 합격했다. 티켓몬스터라는 회사에서 상담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적어도 땀 흘릴 일은 없겠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지금은 쿠팡에게 한참 밀려난 티몬이지만 2011년 당시에는 주목받는 스타트업인데다가 선두주자였다. 시장점유율도 쿠팡과 위메프를 합친 것보다 훨씬 높았다. 하루가 다르게 회사가 커지고, 고객은 늘어나는데 상담원은 20명 남짓 했다. 티몬에서 자체적으로 뽑은 정예요원들의 수가 그랬다.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까 내가 지원한 아웃소싱 회사에 외주를 준 것이었다. 나는 외주 1팀의 1기 사원으로 티몬에 입사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저 그런 쇼핑몰처럼 변질되어버렸지만 처음에는 정말 파격적이었다. 50명 모이면 참치회가 반값. 80명 모이면 코스요리가 반값. 하는 식이었다. 업체는 마진없이 홍보를 하고, 고객은 반값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셜커머스의 태동기였다.      


파격적인데다가 생소한 서비스이다보니 여러모로 좌충우돌이 많았다. 구매 후 7일이 지나면 어떤 경우라도 환불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고객들의 환불 요구는 정말 불 같았고, 반값 손님에게 서비스의 차별을 두는 몰상식한 업체도 많았다. 여러모로 난리도 아니었다.     


일주일 정도의 교육을 받고 투입이 되었는데 정신이 없었다. 전화는 쏟아졌다. 그런데 놀랍다고 해야 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전화가 연결될 때마다 ‘하아아아아.........’ 하는 한숨이 들렸다. 모두가 연습하고 짠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그렇게 하나같이 한숨을 쉴 수가 있을까. 너무 신기했다.      


한숨의 내막은 이랬다. 콜센터에는 ‘응대율’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화 건 사람이 상담에 연결되는 비율을 말한다. 100명이 전화를 걸어서 98명이 연결되면 응대율은 98%가 된다. 2명 정도만 대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끊어버리는 것이다. 내가 일할 당시 통신사의 응대율이 95~98% 정도 되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 투입되었을 당시 티몬 콜센터의 응대율은 경이로운 지경이었다. 우리 응대율은 0.7%였다.      


0.7퍼센트!     


100명이 전화를 걸면 한명정도 운 좋게 연결이 되는 확률.

다른 식으로 말하면 한명이 백번정도 걸어야 한번 연결이 될까말까한 확률이었던 것이다.


도박적인 확률로 연결이 되다보니 사람들이 오랜 기다림과 깊은 울분을 긴 한숨으로 녹여내는 것이었다. 일하면서 스피커폰을 틀어놓고 무한히 연결을 반복했다는 한 40대 남성고객은 ‘출근할 때부터 전화를 걸었는데 다섯 시에 연결이 되는 군요. 아니 그래도 연결이 되긴 되네요? 허허허.’ 하고 해탈의 웃음을 지어보이시기도 했다.     


다짜고짜 욕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울기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 것 아니냐’며. 그럴 때마다 나는 가슴깊이 송구한 마음으로 참회를 했다. 죄송합니다.를 얼마나 발음했는지. 지금도 내가 사과에 서툰 건 그때 너무 많은 ‘죄송합니다.’를 남발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근무시간은 오후 6시까지였다. 콜센터는 퇴근만큼은 얄짤 없다. 칼 중에서도 칼이기 때문에 50분부터는 전화대기를 거의 하지 않는데, 그러면 매니져님은 ‘콜대기 해주세요! 끝까지 한통만 더!’를 애절하게 외쳐댔다. 나는 어지간하면 55분까지도 전화를 받는 시대의 양심이었다.     


55분, ‘한 콜만 더 하자.’는 마음으로 대기를 눌렀는데 역시 긴 한숨이 들려왔다. 고객은 3일째 전화를 걸었는데 드디어 연결이 됐다면서 구슬픈 투정을 부렸다. 다행히 진상은 아니었다. 차분한 말씨에 교양 있는 목소리. 대화가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딱 들었다. 나는 능숙한 솜씨로 사과를 하고, 문의사항을 확인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일이 꽤 복잡했다. 식당을 방문해보니 상품설명에 나온 것과 다른 메뉴가 나왔다는 건으로 환불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업체와 사실관계도 확인해야하고 환불 여부도 나로서는 가늠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어쩔 수가 없었다. 6시에 업무가 마감되니 프로세스대로 내일 다시 확인 후 연락을 드리마고 안내를 드렸다. 그때였다. 그렇게 차분하고 교양 있는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그녀는 일시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 채 소리쳤다.     


야.이.씨.발.새.끼.야.지.금.장.난.하.냐.당.장.내.돈.환.불.해!!!!!!!     


심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심장이 철렁’수준이 아니라 그냥 바닥으로 떨어져서 데굴데굴 굴렀다.


그때 나는 미성숙한 스물 한 살의 남자아이였고, 그녀의 3일 간의 접속시도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칼퇴근을 생각하느라 그녀의 분노를 짐작할 여력이 없었다. 불난집에 휘발유를 드럼째로 부은 셈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목소리는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입에서 불이 나오면 아마 그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나는 그날 무급으로 30분의 추가근무를 하게 되었다. 연신 사과를 했지만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나를 안쓰럽게 여긴 매니져님이 대신 전화를 받아 주어서 간신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때의 콜센터는 그야말로 무규칙 이종격투기와도 같았다. 고객도 그랬고, 상담원들도 그랬다. 정작 중요한 친구 L의 에피소드는 꺼내기도 전에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다. 오늘은 이쯤으로 하고 후에 이어서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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