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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5. 2018

무신론자로 CCM을 듣는 이유

- 신앙없이 찬송가 듣기

CCM: 대중음악 형식의 기독교 음악


나는 열 살부터 스무 살까지 10년간 교회를 다녔다. 이런 말을 하면 그렇게 오래 다닌 교회를 왜 다니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는 개신교인들이 꽤 있다. 그러면 나는 ‘스무 살 부터는 일요일에 교회보다 재밌는 것이 너무 많더라고요’ 하고 대답한다. 스무 살이 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은 사탄이 사실 정말 놀 줄 아는 놈이었다는 것이었다. 알고 니 성경에서 멀리하라고 하는 것마다 아주 재미가 넘쳤다. 그러니까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된 건 내 잘못이라기보다는 교회 때문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조금만 더 재밌는 분이셨다면 흔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것 중의 하나는 분명히 교회를 다닌 것이다.

종교인들과 오래 섞이면서 겪은 실망도 적지 않지만 그 집단이 주는 따뜻함과 안정감도 여전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유대감이나 정서적인 안정뿐만 아니라 수많은 경험과 추억도 얻었다. 거기서 나는 기타도 배웠다. 고등학교 때는 중·고등부 회장을 맡기도 했다. 단상에 서서 매주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어릴 때는 낯을 엄청나게 가리고 숫기도 없는 편이었는데, 그때의 경험 덕분에 이제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건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가 됐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신앙을 가지는 것은 사실 조금 다른 문제다. 예수의 죽음 이후로 제사장 중심의 교회예배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모든 곳이 예배의 공간이 되었으니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반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도 많다. 그곳을 단지 사교의 장으로 생각하거나, 그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이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는 재미가 없어 교회를 그만 다니기로 했지만 신앙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을 했다. 오랜 공부와 사유를 통해 신이 없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무신론자의 마음가짐을 단단히 다졌다. 누군가가 열렬히 예수를 믿는 마음처럼 신이 없다는 마음은 나에게 굳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도 종종 CCM을 듣는다. 여러 가지 계기로 개신교는 나와 무관한 종교가 되었지만. 여전히 듣고 싶은 순간이, 듣고 싶은 날이 있다. 좋은 멜로디 때문이기도 하고 가사가 종교를 초월해서 따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교회를 오래다닌 신앙인 친구에게 ‘예수는 믿지 않지만 CCM은 종종 듣는다.’고 했더니 심히 불편해 했다. 세상 노래처럼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어떻게 보면 신성모독일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안됐는데, 스님에게

 “건조대에 빨래를 널 땐 반야심경을 들어요. 박자 맞추기가 좋거든요.”


라고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면 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래에도 용도가 있는 거니까. 누군가 자기 마음대로 용도를 변경하면 언짢을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멜론에서 CCM을 재생할 때마다 교인인증을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여전히 CCM을 듣는다. 그저 좋아서 듣는다.


내가 가장 자주 듣는 CCM은 한웅재 목사의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다. 사실 이 노래는 그냥 대중 발라드곡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가사에 종교색도 없는 편이다. 가끔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할 때 들으면 효과가 빠른 진통제처럼 증상을 연하게 해주는 그런 노래. 사랑에 대해서 가끔 곱씹게 하는 따뜻한 노래.


신은 내려놓았지만 신에게 바치는 음악은 아직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가끔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동시에 그게 멜로디의 힘만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완벽한 존재보다는 완벽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좋다. 나는 내가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완벽함을 동경하는 사람으로 머물러도 충분히 좋은 곳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건대 내가 CCM을 듣는 이유는 아마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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