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Jun 17. 2019

유난히 외롭지 않고 졸린 밤

천장을 바라보듯 글쓰기

외로울 때가 있고, 외롭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은 유난히 외롭지 않은 날이었다. 하루는 일찌감치 끝이 났고, 졸린데 잠은 안 온다.


열두시까지 실컷 졸리다가 제때 잠들지 못하면 오히려 잠이 깬다. 지금이 딱 그러하다. 피곤한데 잠들 자신은 없다. 벌써 두 시가 한참 넘었다.


이렇게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잠이 올 때까지 자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내일 아침의 고통은 내일 아침에게 맡기고, 그냥 밤의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괜찮다. 억지로 자려다가 잠들지 못하면 그처럼 괴로운 게 없다.


사실 자고 싶으면 얼마든지 잘 수도 있다. 나에게는 친구에게 배운 수면유도법이 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한 친구가 알려준 방법인데, 정말 묘하게 확실하다.


별로 특별할 것도 없이 간단하다.

1. 불을 끄고
2. 누워서 편한 자세를 취한 다음.
3. 천장을 바라보면 된다.

누워서 눈만 뜨고 천장을 계속 보는 것이다.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을 해도 좋다. 눈만 감지 않도록 한다. 자연스럽게 천장을 바라보면서 꿈뻑꿈뻑 하다보면 금세 지루해지고, 밋밋한 천장을 쳐다보면 생각도 잘 안 들고, 어느새 잠이 온다. 이거 참 괜찮다. 수업을 들을 때 쉽게 졸리곤 하는데, 같은 원리인 것 같다. 나에게 선생님이나 교수님들은 모두 직립한 천장이었던 것은 아닐까.


확실하다면서 매일 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게  인위적이고 심심한 동작이기 때문이다. 잠이 올 때까지 천장만 보고 있으면 바보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영 별로다. 한,두 시간쯤을 낭비하더라도 음악듣다 스르륵 잠드는 편이 낫다. 기절하듯이.

     

쉽게 잠들고 싶지 않은 밤에는 무엇이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진다. 지금처럼. 그런데 막상 워드프로세서를 켜놓고 깜빡이는 커서를 보고 있으면 할 말이 없다. 깜빡거리는 커서는 얄밉게 나를 찌르는 것 같다. 할 말이 없으면 쓰지 않으면 되는 것을 나는 무엇인가 써내려고 머리를 쥐어 싸맨다. 할 말이 없는데도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심리는 뭘까. 사실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망설이는 걸까. 잘 모르겠다.

     

외로울 때가 있고 외롭지 않을 때가 있다. 오늘은 외롭지 않은 날이다. 외롭지 않으니까 외롭다는 기분조차 잊어서, 깜짝 놀란 김에 키보드 앞에 앉았다.


그런데 정말 외롭지 않았을까. 쓰면서 느꼈는데. 내가 이 글을 쓰기로 한 건, 사실은 전혀 외롭지 않다가 갑자기 조금 외로워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걸 글로 풀어내고 싶었나보다. 그런 것 같다.

   

외로운 밤에 나는 무엇이든 쓴다. 쓰다보니 외로움이 사라지더라 하는, 그런 아름답고 명쾌한 사건은 없는 밤이다. 글이 여기에 덩그러니 남듯. 감정도 여전히 남아있는 채다. 괜찮다. 아무래도 좋다.


이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고, 어쩌면 멀뚱히 천장을 바라보는 일만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애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