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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20. 2019

‘요즘 애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요즘 애들'이 자라서 꼰대가 된다.

*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는 지구 상에서 사피엔스라는 종 어떻게 출발해서, 무리를 이루고 문명이란 것을 만들어왔는지가 잘 설명되어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은 사피엔스만의 것이었고, 그들은 그 능력으로 종교를 발명한 덕분에 도시나 국가단위로도 결집할 수 있었다.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이룩한 발전은 유래 없는 속도로 전개되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인류의 발전이 자연적인 진화 속도에 비해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적 능력과 몸은 원시 인류와도 거의 유사하고, 몇 천년 전의 인간과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을 정도다. 우리가 남과 여의 타고난 성향이나, 행동 분석에 진화심리학을 참고하는 이유는, 우리가 여전히 초기 인류의 생활습관과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페에 들어갈 때, 카페의 중앙보다는 벽 쪽으로 가서 앉게 된다. 탁 트인 들판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가벼운 담요라도 배나 하반신을 덮어주어야 안심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는, 닫힌 바디랭귀지로 자연스레 전환한다. 거의 완벽히 안전해진 문명 도시에서도,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유전된 불안 심리를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원시 인간과 지금의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특성도 이리 많을진대, 100년 전의 인간과 지금의 인간은 무엇이 다를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등장으로 뇌의 일부에서 변형이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본 바도 있으나) 사실은 그냥 완전히 같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


‘요즘 애들’에게서 등장하는 문제들이 넘치는 것처럼 말한다. ‘요즘의 세태’에 관한 기성세대의 걱정은 크다. 인간관계가 폐쇄적으로 변하고, 감정은 점점 삭막해지고,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공감능력이 없고... 어쩌고, 저쩌고...      


나는 이십 대 후반이므로 누군가의 기준에서는 전형적인 ‘요즘 애들’이기도 하지만 행동반경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자주 만난다. 작년에는 교생실습도 다녀왔고, 초등학교 교육봉사를 한다든가 학원이나 과외로 국어를 가르치며 학생들을 아주 많이 만났다. 스무 살 이하의 학생들을 자주 만나다 보면, 세대차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경우도 아주 많지만. 나는 나보다 어린 초·중·고등학생에게 요즘 애들이 어떻고... 하는 부정적인 표현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느낀 바, ‘요즘 애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요즘 애들’의 잘못이라면 그냥 '요즘 태어났다는 것' 밖에는 없다. 처음에 설명한 것처럼. 100년 전의 사람과 지금의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저 태어난 시기만 다르다. 5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지금 태어났다면 요즘 애들처럼 행동했을 테고, 10년 전에 태어난 아이가 50년 전에 태어났다면 그 당시의 아이대로 자랐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인간관계는 폐쇄적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제약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변화하면서 더 다양하고 활발해졌다. 인간관계는 취향 위주로 형성되며 더 친밀해졌다. 교육 수준이 올라가면서 사람들은 꽤 유쾌해졌고, 이기적이기보다는 개인적인 사람이 훨씬 많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공감능력은 되레 올라갔다.     


모든 면에서 좋아졌고, 지금이 낫다는 무책임한 말은 아니다. 부정할 수 없는 ‘요즘 애들’의 문제들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그들은 그저 주어진 환경에 맞게 자라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 욕먹을 대상은 누구란 말인가. 그들을 잘 키워내지 못한 어른의 문제인가, 부정을 그대로 수용한 아이들의 잘못인가. 나는 그런 질문을 자꾸만 던져볼 수밖에 없다.  

   

‘요즘 애들’을 욕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부끄러움이 필요하다. 검댕이가 잔뜩 묻은 더러운 손으로 종이를 접어놓고, ‘요즘 종이접기는 왜 이렇게 때 묻었어?!’ 하면 안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내 또래부터 그런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이유로 나는 낯부끄러운 날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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