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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Aug 26. 2019

형이 일러준 자발적 을의 연애

형 이야기 (2)

우리 형은 한 번도 여자친구를 차본 적이 없다. 이렇게 말한 것을 형이 알게 되면 버럭 열을 내며,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임마!’ 소리를 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형의 모든 연애사를 꿰고 있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내 예상이 맞을 것이다. 내가 아는 형은 모질게 이별의 말을 내뱉을 사람이 못 된다.     


형은 전역 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가, 귀국해서 스물 다섯의 나이로 뒤늦게 대학 입학을 했다. 바라던 대로 실용음악과에 들어갔다. 대학에 입학한 그해, 형에게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귀게 된 여자친구가 있었고, 언제나 그랬듯 사랑에 흠뻑 빠졌다. 나는 그 지극정성의 모습이 늘 신기했다.

       

방학이었다. 하루는 하루종일 머리도 안감고 TV를 보면서 뒹굴거리던 형이 저녁 여덟시 쯤이 되었을 때 갑자기 머리를 감고 단장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시간에 어딜 가냐고 물었는데, 형은 별 표정도 없이 ‘00이 데리러 가려구.’ 했다. 저녁도 다 먹었는데 여덟 시에 아르바이트를 마친 여자친구를 만나면 무얼 하고 노는지 궁금해서 다시 물었더니 하는 말이, ‘그냥 같이 집에 오는 거지.’ 였다. ‘그게 다야?’ 하니까 형은 별일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응.’     


형은 방학 내내 별일이 없으면 늘 여자친구를 데리러 갔다. 그렇게 만나서는, 같이 버스를 타고 25분 정도를 이동해서 바래다주고 다시 집으로 들어 왔다. (그땐 형과 둘이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연신내에 여자친구가 산다는 이유로 이사했다. 형은 그 여자친구와 헤어졌고, 나는 아직도 이곳에서 살고있다. 형은 지금 안산에 산다.) 뽀뽀나 키스 정도야 했을지 모르지만 1시간도 안 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 걸 보면 정말 집에만 바래다 준 것이 분명했다. 사귄 지 얼마 안 된 신생 커플도 아니었고 네 계절을 이미 훌쩍 보낸 커플이었는데도 어제부터 사귄 것처럼 자상한 형이었다. 왕복차비도 아깝고, 여러모로 비효율적이지 않나?하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그런 호의가 당연한 일로 느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으로

“형, 그러면 바래다 주는 게 당연한 게 돼서 나중엔 안 갈 때마다 서운해하는 거 아니야?”

돌려 말했지만 버릇 나빠지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형은 가볍게 대답했다.

“내가 보고 싶어서 가는 건데?”

대답이 늘 그렇게 쉬웠다.     


고등학생 때도 염색을 하고, 기타를 메고, 폼을 내며 학교를 다녔던 형은 180이 훌쩍 넘는 훤칠한 키와 날씬한 몸매로 나름대로 인기가 있는 편이었는데, 늘 키 작고 귀여운 스타일의 여자친구를 만나서 실컷 잘해주다가 차이곤 했다. 형의 친동생으로서 그런 모습은 가끔 언짢기도 했지만. 각자의 인생이니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형의 연애 스타일은 자발적 을의 연애다. 처음부터 잘해주기로 되어있는 사람처럼 마냥 잘해준다. 그렇게 피크닉을 갈 때마다 매번 새벽같이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새벽 운전을 하고, 데리러 가고, 바래다 주고, 선물을 하고, 못 쓰는 편지를 쓰고, 여자친구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면서 보물처럼 아낀다. 균형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형의 머릿속에는 ‘내가 너무 잘해줘서 상대방이 질리면 어떡하지.’ ‘ 이렇게 잘해주다가 버릇 나빠지면 어떡하지.’ ‘나를 무시하거나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닐까’ 같은 의문들이 전혀 없다. 그래서 늘 차였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에게서 눈물 섞인 전화가 쏟아지고, 찬 쪽에서는 늘 후회 말을 전해 왔다. 한 번 뒤돌면 끝이 되는 잔인함은 예외도 종종 있어서 너그럽게 다시 받아주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형에게는 언제나 나름대로의 어떤 확신 같은 게 있는 것 같았다.      


네가 날 찬다면 그건 너의 부족함이겠지.
      나는 좋아하는 마음 그대로 사랑할 테야.      



형에게 배운 연애의 철학은 그랬다. 좋으면 좋은 대로 잘해주고, 그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  

    

형은 누군가에게 잘해줄 때. ‘이렇게까지 잘해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견이 없게, 논란의 여지가 없게 하는 잘해줌이다. 형은 누가 보더라도, 누가 생각하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잘해주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같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병뚜껑에 담아서 여러번 주는 것이 아니라 생수 한통을 쥐어주고 벌컥벌컥 마시게 해야한다.


곁에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 잘해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다시금 깨닫게 된다. 받기를 바라지 않는 대가 없는 사랑을 나는 늘 흉내 내고 싶지만 간사한 머리로는 따라가기 힘들다.     


나는 세상 누구보다 사랑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지만, 늘 처참하게 미숙하다. 그건 아마 내가 사랑에 대해 너무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냥 좋은대로 좋아하면 되는데, 자꾸 나의 마음을 점검하고, 상대방 마음을 헤아리고, 균형을 맞추, 상처를 계산하고, 감정을 살피고, 미래를 상상하고, 나쁜 선택지들을 피해 가면서 사랑을 망쳐왔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정밀한 정의가 아니라, 사랑의 바다에 머리를 쳐박고 뛰어드는 자발적 을의 연애가 아니었을까. 형은 늘 몸소 그 사랑을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나는 반대로 하며 헛똑똑의 연애를 해온 것 같아 부끄럽다.


형은 2년 째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나고 있다. 형 못지 않게 착하고 귀여우신, 그야말로 영혼까지 맑은 분이다. 비로소 제 짝을 만난 것 같은 형은 결혼 결혼 노래를 부르며 산다. 같이 찍은 프로필 사진만 봐도 진짜 착한 사람끼리 만났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포도 농장을 하는 장인어른에게 점수를 따겠다며, <포도즙 팝니다♡ 택배 가능!>을 몇 달째 카카오톡 상태메세지로 해놓은 형을 나는 오늘도 멋있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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