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Feb 14. 2020

중3 때 나는 교회에서 술을 먹고

-하수구로 고이는 아이들

빗물이 내리막을 타고 모여 한 곳으로 고이는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도 어디엔가로 자꾸 흘러 고였다. 낮은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년시절 내가 고인 곳은 교회였다. 나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신앙심으로 결핍을 극복했다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학창 시절 다닌 교회는 규모가 애매했다. 특이점이 있다면 전통적으로 ‘잘 나가는’ 형 누나들이 많이 다니고 있었는 것이다.(함부로 양아치라고 부르기는 싫어 '잘 나간다'는 당시의 표현을 인용다.) 예쁘거나 싸움을 잘했던, 권사님 집사님의 아들 딸 들이 삐뚤어져나갔고, 그들이 매년 친구들을 교회로 끌여들였기 때문에 잘 나가는 청소년들이 자꾸 늘어난 것이었다.    


우리 교회의 지하는 거의 개방되어있었고, 안락한 방들이 몇 개 있었다. 잘 나가는 형 누나들이 모이고 쉽게 이탈하지 않은 것은 놀거리나 있을만한 공간이 여의치 않은 그들에게 굉장히 안락한 아지트를 제공해주기 때문이었다.


중고등부의 흡연율은 60퍼센트에 육박했고, 예배가 끝나면 모두 아파트 주차장 뒤편으로 가서 담배를 폈다. 나는 중학교에 갓 입학해서는 형 누나들하고 금방 친해져서 망을 보았다.     


학창 시절의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냈다. 혼자서 간 일도 많고, 친구들이나, 형 누나들, 동생들과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다. 우리는 기도나 성경공부 같은 건 거의 하지 않고, 고스톱을 치거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나는 지금도 누구보다 무서운 이야기 레퍼토리가 많은데 그건 모두 그때의 공이다.   

 

모두가 학원에서 미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교회의 어두컴컴한 지하 예배당 구석의 방에서 놀았다. 그러니까 그곳은 비가 내리면 자연스럽게 물이 고이는 웅덩이 같은 곳이었다.     


나는 중3 때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노안인 형 몇이 술과 과자를 구멍가게에서 사 왔다. 고등학생 누나들 셋, 형들 넷, 나와 친구 하나가 교회 지하 예배당 구석 끝방에 둘러앉았다. 소주를 따라 마셨다. 쿨피스에 타 먹기도 했다. 처음에는 술을 마신다는 자체로 너무 신기하고 들떠서 두 병쯤 마셨는데도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형들이 서댐이 술 잘 마신다고 띄워줘서 뭐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술자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고 중3이 끝나기 전까지 아주 띄엄띄엄 몇 번 더 술을 마셨다.     


나의 유년시절은 가난했지만, 가난함으로써 가난에 겸손할 수도 있었다. 왜냐면, 세상에 사연이라는 게 참으로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우리 집의 사연이 나름 깜냥이 되는 비극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정도로는 명함도 못 내밀만한 서사를 가진 멤버들도 적지 않았다. 가련한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처한 비극을 읊으면서 엉엉 울었다. 그걸 듣다가 나도 덩달아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펑펑 흘리던 술자리가 지나고 나면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처럼 친해졌다.


 그즈음의 우리는 어서 어른이 되어 어디엔가 원룸이나 투룸, 혹은 방음처리가 된 연습실을 빌려서 퇴근하면 매일 만나 합주를 하거나 술 마시며 놀자고 약속했다.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지만.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된 건 10년 후 였다. 대학원에 입학해서 과외를 시작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나와 같은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처음 보았는데도,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그들의 환경과, 비행과 고민들은 내가 겪은 당시의 장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방치된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고여 있었다. 수업이 샛길로 새는 중간중간 짧은 상담을 통해 내 경험들을 나누고 공감을 얻을 수는 있었으나 여전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 <박화영>

영화 <박화영>을 보다가 여러 번 재생을 멈췄다. 끝까지 보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아지트에 모여 값싼 농담을 하며 교양 없이 떠드는 비행청소년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폭력을 일삼고 개중에는 비위를 맞추면서 어설프게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익숙했다. 영화는 자신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가 없는, 지적 훈련되지 않은 모습과, 반쯤 체념하고 타성에 젖어버린 모습과,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는 모습들로 가득했다. 굳이 현실적일 필요가 없는 장면들까지 재현해놓았다는 기분. 심지어 주인공 ‘박화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 호구 짓을 반복하고 비굴하게 웃고 쿨한 척을 하다가 죄를 뒤집어썼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나는 그런 방황의, 비행의 시기를 모두 지나고 아무렇지 않게 평범한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다.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씹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도 물처럼 흘러서 어딘가에 고여 있을 그들을 떠올린다. 영원히 고여 있는 물은 없다는 말로 그들을 위로할 수 있을까. 나의 우울함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어두운 곳에 모여 담배를 피워대거나 가정사를 나누면서 술을 마시고 있을 그들과, 고여 있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면 말할 수 없이 아득하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에 의미부여는 없을수록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