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댐 Aug 08. 2017

연애에 대해 물으면 나는,

- 연애 조언은 해주는 게 맞을까?

이별이 꼭 최악의 남녀에게만 벌어지지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수많은 연인들이 수없이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건. 헤어지는 것보다 그 사람을 통해 얻는 기쁨이 조금이라도 크기 때문일 거다. 그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이 싸우는 것보다 더 크거나.  


힘든 연애에 대해, 누군가 조언을 구한다면...


*


나는 연애조언을 하지 않는다.


첫번째 이유는 내가 가진 정보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끔씩 친한 친구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내가 열이 뻗치고 울화가 치민다. '아니 그런 사람을 만난단 말이야? 당장 헤어져.'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사실 나도 그런 하소연을 해본 적이 있다. 나로 인해 발생한 문제에서 나를 쏙 빼놓고 상대자의 반응만 과장해서 들려준다던가. 양쪽의 잘못일때 내 잘못은 충분히 변호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반면 여자친구의 행동은 앞뒤를 뚝 짤라서 내보였다.

내 하소연을 듣던 친구 입에서 내가 아까우며 '헤어지는게 낫겠다.' 라는 말이 나온 건 당연했다.


그러면 나는 그제서야 내가 고고하고 다정하며 아량이 넓은 사람인 것처럼, 그래서 한번 참아주겠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대화를 얼버무리곤 했다.

나는 그냥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조언을 구하는 사람의 하소연은 왜곡되고 편협하기 때문에. 내 경험을 통해서라도 이미 잘 아니까.

그런 얘기를 듣고도 별 할말이 없다.

'그런데도 헤어지지 않는 걸 보면 너에게 그 이상으로 무언가 주고 있나봐. 너의 애인이.'

그렇게 말하고 넘겨버리는 것 말고는.


두번째 이유는


내 말을 들어도, 혹은 듣지 않아도 피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아주 질낮은 남자에게 휘둘려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이별을 권한다고 했을 때. 그 친구가 내 조언을 받아들이고 헤어지게 된다면. 혹시 모르게 그녀를 덮치게 될 이별 이후의 후회는 어느 정도 나에게 원망이라는 이름으로 날아올 수 있다.


얼마전 브런치에서 애널리스트들이 친구에게 주식을 절대 권하지 않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꽤 깊은 수준의 공감을 했다. 만약 잘되면 술 한번 얻어먹는 정도의 일이 생기지만 안될 경우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연애에 대한 조언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한편 내 말을 듣지 않고 계속 힘든 연애를 이어나가는 사람을 보면 그 경우에도 괜히 마음을 쓰게 된다. 내가 이별이나 인내를 권하는 순간부터 언제부턴가 그 일이 나와도 조금은 관계가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아무튼 피곤하더라.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편이 낫다.


세번째 이유는 잘 알려져 있듯이. 어차피 자기 마음대로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조언을 구할 때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결론은 이미 마음속에 있다. 그저 자신의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묻는 것 뿐.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조언과 관계없이 나아간다.


상대방이 얼마나 나쁘든, 자신이 얼마나 힘들든, 얼마나 어려운 상황속에 연애가 놓여있든, 본인만큼 그 일에 골몰히 빠져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될 일이다.


*


당신에게 연애에 대한 고민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그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방과 표정을 맞춰주거나 익살스럽게 웃어주는 것. 또는 끊임없이 칭찬해주는 것이다.


그는 그런 말이 듣고 싶은 것이다.


너는 매력적인 사람이야.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
좋을 때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 법인데 지금은 나쁜 일이 한번 왔나보다.
제삼자인 내가 보기엔 그쪽도 널 되게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되게 힘들더라구.


내뱉는 사람에겐 조언이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잔소리가 되는 말이 세상에는 참 많다.


나와 가까운 소중한 누군가가 연애로 힘들어하며 조언을 구한다면,

그저 우리는 이렇게 토닥이면서, 기꺼이 술 한잔을 계산하면 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신한 남자들이 두렵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