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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담 Dec 07. 2024

삶의 파도 앞에서, 2024년

해파리처럼 살기

<월간 오글오글>은 글쓰기 모임 오글오글 작가들이 매 월 같은 주제로 발행하는 매거진입니다. 12월호 주제는 "2024년을 돌아보며"입니다.

    


    

‘다들 무엇을 향해 살아가는 걸까? 나는 어떤 가치를 좇으며 살아야 하는 거지?’     


여러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좋아하는 일로 수익이 날 수 있음에 기뻤다. 하지만 수입이 불안정했고, 이 일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지금 밀려드는 일들을 하지 않으면, 빨리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지 않으면, 내가 충분히 쉬면, 내가 사랑하는 이 일이 나를 떠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지, 집착하려고 이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머릿속에선 계속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돈을 많이 벌면 그다음엔 뭐가 있는 거지?, 성공이란 것은 뭘까?’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로 삶을 바치고 싶은 가치와 길게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걸 찾아주기 위해 이런 일들이 벌어질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색각검사 0점. 멀쩡했던 내 눈은 며칠 만에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다.


잔상들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1.0 이였던 교정시력이 곧 0.1이 되었다. 안구 ct를 4번이나 찍었지만, 의사는 눈에서 문제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동공 반사가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게 이상하다며, 바로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곧 실명될 수 있으니 서두르라는 말과 함께.     


곧바로 입원 수속을 밟게 되었다. 대학병원의 담당 교수는 자리가 없다는 MRI 센터에 몇 차례나 급하다고 전화해 간신히 점심시간에 검사를 진행했다.    

  

병명은 시신경염. 뇌와 연결된 시신경에 염증이 생겼다고 했다. 깊은 부위라 안구 CT로도 발견이 어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시신경염이 높은 확률로 다른 희귀병이나 유전병의 첫 번째 전조증상이라는 점이었다. 이 경우, 걷지 못하거나, 마비가 오거나, 뇌의 일부가 망가지며 언어 기능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했다.      


온갖 검사를 끝마치고, 피를 10통이나 뽑고 나오니 머리가 멍했다. 그러다 갑자기 훅 덮쳐오는 절망감에 병원 로비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도저히 이 절망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조용히 울었다.        


따스한 봄날, 앞으로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의 늪에서 제발 단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빌었다.


성과와 숫자에 집착하느라 나를 혹사시킨 것,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 무언가가 채워져야만 만족할 수 있다 믿었던 것, 그 모든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게 뭐라고 그냥 그 과정을 더 즐길 걸,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시간을 더 쓸 걸, 더 많은 것을 사랑할걸.’           




매일 타로를 봐왔지만, 그날만큼은 내 미래를 점칠 수 없었다. 만약 결과가 안 좋게 나온다면, 나는 그 길로 삶을 포기해 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잠들기 직전, 어떤 소리가 들렸다.

‘4월 8일이 되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귀로 듣는 음성이 아닌, 심장을 통해 문장이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다른 말은 없었다.


하지만 살면서 몇 번의 예지몽을 꾸었고, 그건 100% 그대로 일어났기 때문에 이 말도 믿어보기로 했다.          




3월 20일, 망가진 시신경을 살리기 위해 스테로이드 1,000알 분량을 정맥으로 투여하기 시작했다. 10알만 먹어도 고용량이라 위험이 있는 약이지만, 혈액을 타고 깊은 뇌신경까지 전달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3일간 밤새 스테로이드를 맞느라 온몸이 부었고, 혈당이 치솟았다. 다행히 시력은 절반 정도 돌아왔고, 색은 여전히 이상하게 보였다.      


항암 치료만큼 독한 약이라 하더니, 퇴원할 때는 5분만 걸어도 숨이 찼다. 뼈가 계란 껍데기처럼 약해질 수 있으니 어딘가에 부딪히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고 들었다. 두 달 뒤에 나온다는 희귀병에 대한 검사 결과는 듣지 못한 채, 퇴원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시력과 약해진 몸 탓에 누군가를 만날 수도, 일을 할 수도 없던 그 멈춰진 시간 동안 계속 눈을 감고 생각했다.


만약 건강한 몸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궁금한 것들을 탐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돌보며 나를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싶었고,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싶었다. 돈이나 물질, 누군가의 인정이 아닌 오직 그뿐이었다.


그렇게 멈춰진 시간은 신기하게도 정말 4월 8일을 기점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시력이 완전히 회복되었고, 알 수 없던 통증도 사라졌다. 정말 다행이게도, 모든 검사 결과에서 정상이라는 소견을 끝으로 나를 덮친 파도는 물러갔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후, 3년을 만난 가족처럼 지내던 연인과 갑작스럽게 이별했고, 기존에 참여하던 모임들도 어떤 이유들로 하나씩 정리되었다.      


변화는 달갑지 않다. 소중한 것들이 썰물처럼 단번에 쓸려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삶의 파도 앞에서 나는 한 마리의 해파리가 되고 싶었다. 저항하지 않고, 힘을 빼며 그저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둥실둥실 떠다니며, 그 어떤 것도 놓지 않으려 애쓰지 않고 가만히.     


그리고 이 글을 쓰는 2024년 12월, 되돌아보니 나를 휩쓸어갔던 파도가 훨씬 좋은 것들을 가져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이런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하며 감탄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더니 변하지 않는 단단한 평화가 찾아왔다. 혼자 가만히 있어도 이렇게 평화롭고, 재밌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일 만큼 신기했다.


더 이상 프로젝트 칭 전, 긴장과 불안으로 잠을 설치지 않는다. 어떻게 되든 행복하면 그만이다. 2025년도 이렇게 해파리처럼, 힘을 빼고 삶을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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