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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당 개 n년 차 Feb 26. 2024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10. 몰입을 처음 알고 일어난 감성

 '문화의 차이'를 느낀 이야기를 이어서 쓰려고 한다. 위 사진의 비닐봉지는 내가 유럽과 아시아의 '문화의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사진은 스위스에서 찍었지만, (아직 프랑스의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문화의 차이에 대해 일어난 내 감성들을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서 설명하고 싶어 먼저 사용하게 됐다.


 #9의 감성을 일으킨 사진에 대한 글을 간략하게 먼저 말하자면, 동아시아인을 야만인이라 말하는 모순적인 태도(푸아그라를 얻기 위한 거위 농장의 사육방식에 비추었을 때)에 '분노'를 잠깐 느꼈지만, 유럽을 여행하며 이내 그 문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유럽인들, 그들은 '개'라는 동물을 인간과 매우 깊은 관계를 갖는다고 생각을 갖게 했으며, '반려동물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느껴졌다.(적어도 그 당시 동아시아, 우리나라 보다 더욱 그렇다고 나는 느꼈었다.) 그것을 느끼게 해 준 첫 번째가 바로 위 사진의 도시 곳곳 배변봉투였다. 개라는 동물을 한 두 사람, 여러 사람을 넘어 도시에서, 나라에서 애정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개를 데리고 다니는 견주들에게서도 견주와 반려견을 넘어선 가족이나 친구의 끈끈한 관계를 느꼈었다. 일례로 이탈리아의 수상택시에서 정말 귀여운 퍼그를 보았는데, 짧은 영어로 견주와 대화하며 아이를 쓰다듬었다. 견주가 매우 흐뭇해하며 팔뚝의 퍼그를 그려 넣은 문신을 보여주었고, 정말 애정?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더한 무언가가 느껴졌었다. 그에겐 그 아이는 정말 자식처럼 보였다.


 모순적이라고 표현했던 유럽인들의 그 태도가 이해되면서, 내 안의 작은 부끄러움이 일었다. 잠깐의 여행으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정말 동아시아의 개를 먹는 문화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잔인하고 과격하게 다가왔을 것이다.(물론, 덮어놓고 유럽인들만 이해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문화의 차이에 대한 이해도 양쪽에서 이루어져야 그것이 가장 이상적이고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군대도 갔다 오고, 대학원에도 있었고, 이제 사회에 나와 또 다른 많은 사람들, 문화를 만나보면서 내 생각과는 다소 다를 수 있는 문화를 만났을 때, 가슴으론 와닿지 않아도 먼저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으며, 일단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 이러한 새로운 문화를 대하는 감성이 예쁘고 좋은 것이라 생각이 든다. 아마 유럽 여행을 시작으로 이러한 감성이 점점 커진 것 같다.






 '카르페디엠'이라는 라틴어 구절을 아는가? 나는 이 구절에 대해 들어보기는 했으나, 전혀 아는 게 없었고, 딱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카르페디엠을 위해 매우 치열하게 신경 쓰고 노력한다. 그래서 지금은 이 라틴어 구절의 뜻도 잘 알고 있지만, 진정으로 이루고 있는지는 매번 회의하고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책들을 한참 찾아 읽으려고 할 때, (아직은 영상 콘텐츠를 훨씬 더 많이 보고 있었다.) 책을 소개해 주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지금은 자주 찾아본다. 정말 독서량이 뛰어나신 것 같으며, 당연히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그분의 해석을 매우 좋아한다.) 농구선수 서장훈 님의 인터뷰 내용을 먼저 언급하며 영상이 시작되었다. "일을 즐기는 자가 노력하는 자를 이긴다."라는 말에 대해 소신을 한껏 담은 반발이었다. 일을 즐기면, 반드시 망하며 "여러분, 청춘의 모든 행동에 응원한다."라는 말에 매우 무책임하다며 질타를 던졌다. 나도 마침 대학원을 졸업하면서 느낀 점들이 많아 매우 공감했었고, (주어진 일에 일단은 무조건 열심히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결과를 냈었으니까..) 이 말에 또다시 반발하는 크리에이터의 말이 매우 흥미로웠다. 영상을 끝까지 다 봤을 땐, 흥미롭지만은 않았다. '즐기는,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반발들이 생겨났을 수 있다는 생각과 카르페디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몰입'이라는 형태로 매우 '노력'해야 함을 주장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홀린 듯, 영상에서 소개하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을 사서 읽고 있었다.(원서까지 구매했지만, 번역서만 2번 읽었다.)


 '몰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카르페디엠'이라는 어쩌면 낙관적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은 전혀 보이지(느껴지지도) 않았고, '진실되게 노력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듣는 것 같았다. 영상을 보고 다가왔던 두루뭉술한 느낌이 구체적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서장훈 님에게 매우 공감했던 내가 깨어지는 느낌을 받아 너무나도 신선했고, 두 번째 읽고 있을 땐, '몰입'이 너무 하고 싶었다. 크리에이터의 해석과 같이 '몰입'과 '행복'이 이어진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덧붙여진 해석으로 "내가 지금 '몰입'을 하고 있으며 이는 즐거운 것이다."라는 인지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해석이라기보단 책을 관통하는 해설이 맞는 것 같다. 미하이도 같은 맥락의 서술을 했다.) 서장훈 님의 "정말 행복하지 않았으며, 정말 고통받으며 했다."라는 말에 이어서 서장훈 님도 어느 순간 분명 '몰입'을 하고 있었을 것이며, 그것이 즐겁다고 인지했었다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하는 크리에이터에 매료되어 나는 구독버튼을 누르고 '몰입'에 대한 서적들을 더 찾아봤다.



현재를 꽉 잡아라, 내일은 아주 조금만 믿어라. -호라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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