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당 개 n년 차 Feb 19. 2024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9. 신입생에게 질문하기를 당하고 일어난 감성

 파리에서, 오히려 나는 디저트보다 먹고 싶은 게 있었다. 푸아그라, 거위 간 요리였다. 한국에선 접할 수 없고, 맛을 떠나 너무나도 궁금했다. 묵고 있었던 한인민박에서 주변 식당들 정보를 받아 푸아그라를 찾아 나섰다. (사실 들어가는 식당마다 내가 혼자 푸아그라를 찾았던 건지, 푸아그라를 하는 식당을 찾아 들어갔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곧 어느 식당에서 푸아그라를 찾을 수 있었고, 너무나 바로 찾았다는 생각에 다소 허무했지만 이내 궁금함에 다시 설렜다. 같이 놀러 간 친구들과 각자 전채요리 한 가지, 메인요리 한 가지씩 주문했는데, 나는 전채에도 푸아그라를 활용한 게 있어서 전채와 메인모두 푸아그라를 쓴 것을 시켰다.(달팽이요리를 시킨 친구도 있었는데,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에 푸아그라에 눈이 돌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애 첫 푸아그라를 맛봤고, 간단하게 맛을 설명하자면 전채요리(위 사진에서 왼쪽이다.)는 우리가 한국에서 순대와 같이 먹는 간인데, 조금 더 부드러운 간의 느낌이었고, 익힌 스테이크식의 요리는(오른쪽이다.)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았고, 평범한 스테이크 같았다. 사실 푸아그라가 감성을 일으킨 것은 처음 먹어본 요리의 맛이나 느낌이 아니라 푸아그라를 먹는 문화 그 자체에 있다. 한국사람이면 한 번쯤 '한국은 개를 먹는 야만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기사를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정확한 국가는 모르겠지만 유럽 쪽의 외신에서 나온 내용으로 알고 있다. 파리에서 나는 푸아그라를 먹기 전에 조금 조사를 해 보았었고, 거위의 간을 식용으로서 얻기 위해 거위의 간을 비정상적으로 키우는 방법을 보게 되었다. 거위의 목구멍에 파이프를 통해 강제로 사료 등을 먹여 거위를 살찌게 하는 것이다.(물론 이런 방법 없이 자연적으로 사육하는 농장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방법을 쓴다고 한다.) 나는 이런 자료들을 접하고 사육방법에 놀란 것도 아니고, 내가 접했던 외신의 '그 태도'에 뭔가 열이 올랐던 것 같다. 너무 '아시타비(我是他非, 우리가 흔히 쓰는 '내로남불'의 뜻을 가진 사자성어이다. '2020년 올해의 사자성어'에 선정되기도 했다.)'의 상황이지 않은가? 나도 한국인이지만 식용 개를 키우는 과정이 다소 잔인하다고 생각해 왔었고, 하지만, '그 태도'를 거쳐 우리나라만 야만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실소가 나왔었다.


 다만, 유럽과 동아시아의 식문화의 차이가 있고, 표현이 다소 과격한 면이 있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억지(?)로 이해했던 것 같다. 사실은 억지로 이해했던 것이 유럽여행을 다니면서 합리적인 이해로 바뀌었다.(다음 글에서 바로 다루겠다.) 살짝 미리 스포일러를 한다면, '문화의 차이'를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이때의 경험도 그렇고 더 많은,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서(그게 한국이든 외국에서든) 문화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나와의 어떤 '차이'가 있다면 설사 그게 나를 불쾌, 화가 나게 할지라도 우선 이해하려고 노력하도록 나를 바꾼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우선 이해하고 조금 더 깊이 알아보면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대학원 시절 연구실에서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문득 떠올랐다. 내가 요즘 스타트업을 준비하면서 지원사업이든, 투자를 위한 것이든 사업계획서 따위의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났던 것 같다.(이유는 뒤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연구실에서 스터디 내용이나 실험결과를 공유하기 위해 글을 쓰거나 자료를 만들어 발표할 때 자주 들었던 말들이다.


 처음 '메시지를 잘 전달하는 법'에 대해 들었던 것은 입학하기도 전에 방학 동안 그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처음으로 연구실의 팀미팅에 들어가 발표를 듣고 있었는데(절반은 넘게 못 알아들었다.) 교수님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보이셨는데, 갑자기 내쪽으로 몸을 돌리고 내게 물으셨다. "방금 설명이 이해가 되나요?" 당황했지만 모르겠다는 대답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생각해 보면 하나도 이해를 못 했었다.) "정확히는 아니지만 어떠한 느낌으로 이해를 했다."라는 표현을 했던 기억이 난다. 교수님은 바로 내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음을 알아차리셨고, (...) 말을 이어나가셨다. "누군가에게 스터디 내용이나 실험결과를 설명할 땐, 그 누군가가 어떤 누군가가 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전 신입생이 들어오면 항상 신입생에게 질문하고, 다른 학생들에겐 신입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발표하라고 가르칩니다." 사실 바로 그 당시엔 교수님 질문에 답해야 된다는 것에만 생각이 온통 가 있었고, 감성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원에 정식으로 입학하고 나도 발표를 하고 내 자료들을 설명하는 자리를 몇 번 거치게 되면서 교수님의 '신입생에게 질문하기'에 대해 감성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교수님은 '중학교 3학년의 학생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단어 선택과 서술'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셨는데,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는 대부분 대학생도 아니고, 학계에서 공부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인데 내가 조금 어려운 단어들을 늘어놓는다고 정말 못 알아들을까?" 그러나 계속 경험하면서 일어난 감성들을 교수님의 말이 맞았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알아듣지 '못' 하는 것보단 '안' 하는 것에 가까웠다. 교수님은 '청중의 집중력' 내지는 해당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지''중학교 3학년의 정도'라는 표현을 하고 계셨던 것이라고 느껴졌다.(문득 궁금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여쭤볼 것이다.) 그러면서, 대학원 과정 동안 발표 등을 준비하면서 "이 정도면 너무 쉬운 내용인가?"라는 고민이 항상 따라왔었지만, 매번 더 풀어서 설명해야 했으며, 더욱더 풀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지금도 물론 매우 신경 쓴다.)


 최근 읽었던 마케팅 서적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이야기의 수준을 초등학교 3학년에 맞추어야 한다는 글을 보았다. 덧붙여, 이는 미국뉴스에서 서술되는 수준이며, 16년도 미국 대통령 예비선거 기간에 진행된 흥미로운 연구를 설명했다.(연설의 난이도를 측정하는 '플레시-킨케이드 테스트를 진행했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초등학교 3~4학년의 난이도)와 다른 후보들(테그 크루즈와 벤 카슨, 각 고등학교 1학년과 중학교 3학년의 난이도)을 비교하며 현학적인 단어를 사용하여 똑똑해 보일지는 몰라도 사람들에게 영향은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돈이 목적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싶은 사람으로서 매우 인상 깊은 내용의 글이었고, 이 글이 교수님의 '신입생에게 질문하기'와 자연스럽게 겹쳐져 떠올랐다. 사업을 준비하는 지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지도교수님의 그때 그 질문에서(매우 당황했었지만) 지금에서야 너무 감사함을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