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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당 개 n년 차 Mar 25. 2024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13. 대학원 선배의 충고를 듣고 일어난 감성

 '슈프림'이라는 브랜드를 아는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며, 거리의 스케이트 보더를 중심으로 힙합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특히 사랑받는 어패럴(?, 어패럴로 한정 짓기엔 다양한 분야의 업계와 협업한 이력이 정말 많다.) 브랜드이다. 브랜드 이름부터 '최상급', '최고의' 뜻을 가지며 힙합적인 요소의 제품들을 만들어냄에도 우아하고 예쁜(?) 느낌을 개인적으로 주로 받았으며, 하나쯤은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다만, 다른 브랜드들과는 다르게 당시엔 한국에서 매장 자체를 볼 수 없었고, 온라인에선 가품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제품을 구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온라인에서 정품이라고 하는 것들은 가격이 악랄했다.) 그런데 파리에서 관광지는 전부 돌고 맛있는 음식들과 쇼핑을 즐기고 있을 무렵, 파리에 매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구경이나(가격이 비쌀 테니) 하자고 내가 친구들 전부를 끌고 들어갔다. 많은 제품은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셋업이 있어서 한번 입어보겠다고 탈의실에 들어가 가격표(사실 대학생인 나에겐 이게 제일 중요했다.)도 확인했다. 셋업 중 상의에만 가격표가 붙어있었는데, 고민이 되었다. 유럽까지 왔는데, 하나쯤 살 만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분 고민하다가 계산대에 가서 셋업 중, 상의만 계산대 위에 올렸는데, 직원이 나머지 하의도 가져가 담으려 했다. 나는 당황해서 다급하게 짧지만 정확한 표현으로 상의만 사겠다고 말했다. 직원은 웃으면서, 이 가격이 두 개 전부의 가격이라는 것이었다. 부자연스럽게 웃으면서 담아달라고 했고, 속으론 환호를 지르며 매장을 빠져나왔다. 나처럼 이 브랜드를 좋아하는 친구와 신나게 떠들면서 가격에 대한 얘기를 계속했다. "한국에선 왜 이리 비싼 것인가?", "한국엔 왜 매장이 없을까?" 친구가 한국엔 재판매 행위가 너무 많아서 브랜드에서 매장을 내지 않는다는 소문을 얘기해 주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며 숙소로 돌아왔던 것 같다.


 당시에 학교에서 교수님들께 '패스트 팔로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일까? '슈프림' 매장을 빠져나오면서도 '패스트 팔로어, 한국'에 대해서 떠올렸다. 모든 분야, 업계에서 앞서가는 이들을 빠르게 따라가는 전략을 잘 구사해서 성장을 이룬다는 것이지만, 이제 그만하고 우리의 것, 한국의 것을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감성이 일어났던 것 같다. 나는 그 당시에도(약 10년 전인데, 한국의 역사를 생각하면 얼마 전이라고도 생각된다.) 한국이 충분히 우리의 것을 발전시키고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서울의 강남에 '슈프림'매장이 있다. 불과 얼마 전과 비교하여 한국은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만의 것들로(음악, 미디어, 반도체 등이 있다.)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어패럴, 패션 업계에서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을 배출하며, 한국 소비자들도 바뀌는 것 같다.(특히, 작년부터 올해까지 '가치소비'의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라고 들은 바가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럽에서의 내 생각이 반만 맞고 반은 틀렸던 것 같다. 우리나라가 우리만의 것을 개발하고 만들만한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는 점은 맞았지만, 이미 우리나라는 '패스트 팔로어'를 벗어나고 있었다는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이미 남들을 따라가지 않고 '한국만의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또 몰입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지루해하지 말라. 농담이다.) 내가 요즘 갖는 현실적인 생각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나는 현실적인(?) 생각과 행동을 잘 못한다. 바로 직전의 글에서 언급한 것이 기억나는가? 두 가지를 얘기하자면, 나의 과거 일처리 방식과 KFC 창업주 이야기이다. 나의 과거 일처리 방식에 대해 건강적인 측면에서만 단점을 언급했었지만, 실제 시간적인 효율 측면에서도 매우 단점이 크다. 중요한 일처리가 밤, 새벽에 진행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 처리를 하는 오전, 오후엔 나의 일처리가 매우 더뎠기 때문이다. KFC 창업주 할아버지도 '끊임없는 노력'이라는 주제의 미화에 가려진 '엄청난 시간적 소모'라는 '안타까운(?) 현실'이 뒤에 있다.(물론 그 과정에서 느낀 행복, 몰입의 측면에서 보면 또 다른 얘기지만 이번엔 오로지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려 한다.)


 위 두 가지 이야기에 대한 생각들을 대표적으로 나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고, 내가 현실적인 생각과 행동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매우 최근에서야 인지하기 시작했다.(그래도 만 1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여러 감성들이 일어나고 이것들을 정리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 사람을 한 명 소개하고자 한다. 대학원에서 친하게 지낸 선배 중 한 명이다.(이번 이야기 말고도 나에게 많은 감성을 준 인물이다. 또 소개하겠다.) 이 선배는 항상 야망(?)이 있는 나에게 신기하고 부럽다고 했으며, 자신은 겨우겨우 주변 사람들의 기대만 맞추며 살아간다고 했다.(나도 이 선배를 매우 신기해했다. 말은 이렇게 하면서 대학원에서부터 매우 실적이 좋았고, 지금은 서울 모 대학의 교수이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저녁에 커피를 마시다가 물었었다. "형은 야망도 동기부여도 약하다고 맨날 얘기하면서 어떻게 일처리를 잘해 나갈 수 있어요?" 갑자기 그 선배는 매우 진지해졌고, 묘수를 알려준다며 얘기를 덧붙였다. "나는 동기부여는 없어도, 방법을 알아. 지금 스트레스받는 일을 그냥 하면 돼." 그 당시에도 많은 감성을 느꼈지만 실제로 적용은 힘들었고, 지금에서야 매번 감성을 일으키며 나에게 힘을 주는 한 문장이다.


 위 문장을 좌우명 삼아 습관을 만들어가려고 하니, 정말 시간이 많이 생겼다. 내 주변의 진짜 '지금 당장 중요한 일(스트레스를 주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고, 해결도 생각보다 쉬웠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 더 운동하고, 놀고,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한 것 같다. 이것이 앞의 글에서 말한 '건강한 몰입', 그리고 최근 아주 재밌게 읽은 '크래프톤 웨이'(한국 게임업계의 대작 '배틀 그라운드'를 만들어낸 창업자들의 이야기, 집필은 기자 출신 작가가 진행하여 서술도 매우 재밌고 훌륭하다.)에서 장병규 의장이 말한 '무리 없는 최선'을 수행하는 데에 아주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내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내 무기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러한 무기를 갖게 한 감성이 학계와 업계로 갈라졌음에도 우리를 이어주는 것 같다. 또한, 선배에게 꼭 보답하려 열심히 하고 있다.(물론, 지금은 엄청 얻어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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