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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당 개 n년 차 Jan 14. 2024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5. 취미를 고민하다가 일어난 감성

이것도 파리에서의 사진이다. 아직도 파리에서의 감성을 일으킨 사진이 많이 남아있다. 여행의 첫 도시라 더욱 그랬을 수 있지만, 30일 정도의 여행에서 실제로 5일 정도, 오래 있었다. 같이 간 친구들과 여행스타일이 안 맞아도 너무 안 맞았지만 한 가지, 잘 맞았던 부분은 "어떤 도시를 가기로 결정했으면 적어도 그 도시를 진하게 겪어보고 오자."였다. 그래서 파리에도 오래 있었다.


우리나라에 교회가 정말 많은 것처럼 유럽엔 성당이 정말 많이 보였다. 이국이라 그랬는지 정말 예뻐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은 성당들에 이끌려 들어갔다.(관광 계획에 없던 성당도 보이면 일단 들어갔다.) 그중 파리에서 처음 들어간 성당인데 사실, 어디인지 모르겠다. 처음 들어가 천장화를 찍은 곳인 것만 기억난다.


사실 처음엔 천장화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높은 층고가 주는 위압감과 건축 구조물들의 아름다움에 먼저 눈이 가고 그다음으로 천장화가 눈에 들어왔다. 단순히 "잘 그렸다."라는 감상이 전부인 얕은 지식으로 천천히 보고 있다 보니 문득, 말도 안 된다는 생각만 머리에 남았다. 간단하게 채색만 하더라도 어려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떻게, 저런 정교한 '잘 그린' 그림을 저 높은 곳에 표현했을까?" 더 이상 그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림을 밑에서 봐도 아찔한 천장에, 심지어 수준 높게 남겼다는 사실에 정의하기 어려운 어떤 웅장함에 압도되고 있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엄청난 높이의 천장에 그림을 '그렸다'라는 사실에 가장 압도되었던 것 같다.) 물론 현대 건축 공법 등을 많이 접하는 지금에야 쉬워 보일 수 있지만 건축 시기를 고려했을 때, 기술적인 제한도 있었겠거니와 더욱 감성을 일으키는 것은 당시 '예술가의 시도' 그 자체이다. 강제적인 부분이 있었을 수도 있고, 엄청난 보수로 인한 욕심이 도움이 됐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기술을 어떻게 믿고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과 그림을 그려낸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만 일어나고 있었다.


천장화는 유럽을 여행하며 여러 성당에서, 건축물에서 많이 봤지만 처음 천장화를 보며 일어났던 감성을 적고 싶었다. 파리에서의 감성들을 적으면서 '예술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계속 말하지만 놀라움과 존경심이라는 단어만 떠오를 뿐이다. 천장화 하면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에 대한 내 감성도 여행 사진들이 이탈리아의 것들로 넘어갈 때, 꼭 글로 남길 것이다.




취미를 고민했다는 말보다, 나를 돌아봤다(?)라는 말이 더 맞는 표현 같다. 학생 때는 나름 공부한다고(다들 정말 많이 노력하니까, 그땐 나도 정말 공부가 제일 힘들었다.) 나를 생각해본 기억이 잘 없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1년은 술자리를 찾아다니느라 나를 돌아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에서의 1학년 2학기, 다음 학기 전체 등록금(?)에 해당하는 성적을 받고(학부시절의 재수강 과목은 다 이 시기에 들었던 과목이다.) 군대를 가서 좀 굴러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도망치듯 입대를 했고, 훈련소에서 인생에서 처음으로 진득하게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았다.


처음엔 "내가 무엇을 하고 싶나?"를 고민했었다. 업에 대한 고민은 초등학생 때부터 항상 과학자였으며, 그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아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를 하고 싶었다.(군대도 좋은 대학의 연구실을 들어가고 싶었기에 빨리 다녀와서 나를 다잡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럼 내가 취미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고민으로 이어갔다. 어릴 때부터 즐겨했던 탁구, 볼링, 태권도, 앞으로 해보고 싶은 승마, 수영, 독서 등 고민은 고민이었지만 깊은 고민은 아니었다. 자대배치를 받고 군대를 다녀온 남성분들은 알겠지만 이등병, 일병은 무언가를 고민할 시간이 없다.(국군장병들 힘내십시오.)


신기하게도 군대에서의 시간이 흘러(?) 내가 상병이 되고 병장을 바라보고 있을 때, 우리 중대 중대장님도 곧 전역을 앞두고 계셨다. 중대장님이 어느 날 함께 놀러 가자며 간부 전역자 취업교육 세미나에 나를 데려갔다. 여러 연사분들께서 차례로 자기소개서, 영어공부 등의 주제로 강의를 해 주셨는데, 그중 한 분이 정말 인상 깊었다. 사실 어떤 주제였는 지, 다른 내용들은 기억 안 나고 "CGV는 팝콘과 콜라로 돈을 버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과 그분의 '나 알기 프로젝트'가 기억에 남는다. 프로젝트라는 말을 써서 거창해 보이지만 사실 간단하다. 수첩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 못하는 것을 전부 적어보라는 것이었다. 부대 복귀 후, 당장 그날 저녁부터 수첩에 다 적어봤다. 좋아하는 음식, 색깔, 행동, 음악 등 가릴 것 없이 생각나는 대로 적어봤다. 다음 날까지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별로 못 적었다. 내가 나를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1차로 놀랐고, 고향친구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2차로 놀랐다.(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동문이다. 징그럽다.) 생각보다 아주 쉽게 많은 것들을 얘기해 주었다. 내가 잘하는 행동, 말, 사람을 대할 때의 장단점, 능력적인 부분까지. 너무 신기했다. 정신없이 적고 나서 가만히 들여다보았을 때도 꽤 나에 대한 묘사가 정확해 보였다.(징그럽지만 고마웠다.)


사실, 다시 그 수첩을 찾아보지 않는 이상, 무슨 내용들이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때의 감성은 기억이 난다. "나를 자주, 의식적으로 돌아봐야겠다."로 정리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감성이 꽤 지속적으로, 심지어 지금도 이어져 오는 것 같다. 이러한 감성이 나의 경우에 꽤 도움이 된다. 결정을 해야 할 순간에, 나를 제대로 알고, 나의 가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상태라면 손쉽게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지금까지 그래왔다고 자신한다. 이러한 '지속적인 감성'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 본다면, 과거에도 자주 이런 느낌을 받아왔는데, '내 인생(모험)을 헤쳐나가기 위한 좋은 도구(무기)'를 얻은 느낌이다. 장황하게 늘어놨고, 귀납적인 결론에 도달해서(귀납적인 결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알기 프로젝트'를 추천할 힘이 다소 부족하지만,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에서 가장 높이 있는 5단계의 욕구를 떠올려보면 누구나 가슴깊이 '나를 알아가고, 좋은 무기를 얻는 것'에 대한 열망이, 욕구가 존재할 것이라 믿고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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