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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당 개 n년 차 Jan 28. 2024

감성을 일으키는 것들

#7. 비(雨)를 떠올리면 일어나는 감성

파리에서의 이틀? 사흘? 차에 오전 일찍부터 숙소를 나와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전철에 올라탔다. 오전 일찍부터 준비했음에도 꽤 기다렸다가 입장할 즈음엔 오전 시간이 끝나가며 배가 너무 고팠다.(들어가서 궁전 내부만 잠깐 구경하고 정원에 나가 야외식당에서 밥을 먹었는데 그곳 피자가 너무 맛없었다. 샌드위치도 부실했다.. 베르사유 궁전에 갈 계획이 있다면 꼭 구경을 마치고 밥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본격적으로 야외 정원을 구경하는 데 해가 이미 중천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한 여름에 여행을 갔으며, 중간중간 시원한 곳을 찾아야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유럽여행이 2~3일 차가 되니 유럽에서의 피서 방법을 깨달았다. 한국에서 은행을 찾았던 것처럼 유럽에선 '그늘'만 찾으면 해결되었다. 한국 여름의 불쾌지수를 책임지는 '습도'가 유럽에선 매우 낮았다.(본인은 피부가 건조한 편이라 한국에선 겨울마다 각종 크림을 애용하는데, 유럽에선 여름에 샤워 후의 그 얼굴에 느껴지는 건조함이 정말 신기했다.) 때문에, 여행 중에 더워지기 시작하면 네 명 중 한 명은 "그늘로 가."라는 말을 했고, 나머지는 아무 말 없이 그늘을 찾는 레이더를 돌렸다.


그래서, 여유로운 프랑스의 오후에 베르사유 궁전 정원 '그늘'에 앉아 그늘이 아주 샛노란 햇빛과 만나는 지점을 보고 있었는데, 문득 유럽의 기후(?)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또 뭔가 한국보다 햇빛과 그늘의 대비가 심해 보였고, 사진을 찍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우리나라의 계절을 배우면서, 1년 내내 춥거나, 더운 나라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2016년 여름, 유럽에서도 적잖이 놀랐던 것 같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 간에도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내가 처음 가는 모든 곳, 나아가 처음 하는 모든 일도 미리 찾은 정보만으로 예측하고 심지어 판단까지 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 생각이 많은 것을 고민하고 따져보지 않고 시도, 행동할 수 있도록 나를 바꾼 것 같다.(물론, 신중한 고민도 중요하다.) 나는 바뀐 내가 좋고, 이런 면에서도 '유럽여행'에 감사하다.






내 하루의 전체적인 기분을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가 책임지는 것 같다. 나는 한국에서 '겨울의 맑은 날'을 참 좋아한다. 적당히 건조하며 따스한, 외투를 두껍게 입으면 적당히 추운 그런 날에 아침에 집을 나서면 정말 기분이 좋다. 그래서 유럽에서 여행할 때, (이번 글에선 위의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나도 주제를 정해 글을 쓰며 신기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유럽의 날씨'를 떠올리면(특히, 여름 날씨) 떠올리는 것 만으로 다시 가고 싶고, 그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


내가 한국 겨울의 맑은 날, 유럽의 여름 날씨를 좋아하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습하지 않아서'이다. 어느 계절이든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눈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치워야 한다..) 지금도 비가 온다고 '파전에 막걸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떠오를 뿐이다. 나는 옷, 신발들을 정말 아끼는데, (세탁도 최대한 하지 않으려 하고, 하더라도 손세탁을 주로 한다.)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신발을 무조건 '비 오는 날 전용신발'을 신고, 요즘은 아니지만 '비 오는 날 전용 옷'들도 따로 정해놓았었다. 제일 최악의 상황은 '아래쪽에 물이 꽉 찬 보도블록을 밟았을 때'이다.(방금 상상만 했는데도 끔찍하다.) 바지와 신발이 한방에 더러워진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아끼는 옷을 입어야 할 때, (데이트나 갖춰야 하는 자리) 비가 온다면 그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랩탑 등의 큰 전자기기나 전공책을 챙겨서 이동할 때에도 너무 신경 쓰인다. 가장 신경 쓰이고 싫은 건 '습도'이다. 습도로 인해 생기는 창문들에 결로, 여름철엔 내 몸에도 일어나는 결로(?) 현상이(내가 옷을 세탁하는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땀을 흘렸을 때'이다.) 너무나도 싫다. 그래서 더욱더 유럽의 여름날씨에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래도 비가 올 때, 기분이 좋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필요조건들이 좀 많지만 기분이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사실 비가 오는 날에 이 필요조건들을 맞추려 부단히 노력한다..) 먼저, 비로 인한 더러움, 습함을 겪지 않기 위해 하루종일 밖을 나가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빗소리가 잘 들리는 곳으로 이동한다.(그래도 빗소리는 기분을 좋게 하는 것 같다.)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가만히 있으면 된다. 비는 싫어해도 비가 올 때 듣고 싶어 지는 노래는 있다. 뜨거운감자의 '비 눈물'이다.(김C의 목소리를 정말 좋아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예외적으로 틀어놓았다.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만족한다면 파전에 막걸리가 떠오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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