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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창 Jul 21. 2022

유무력의 법칙에 의한 < 반야심경 >의 해석 _ 2

유무력의 법칙




<유무력의 법칙에 의한 < 반야심경 >의 해석 _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3. '오온개공'의 의미


'오온'은 존재의 다섯요소<색(물질), 수(느낌), 상(인식), 행(의지), 식(식별작용)>를 말합니다.

간단하게 말해, '오온'은 '유(有, 있음)'를 말합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것, 내 인생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공(空, 빌 공)'은 '무(無, 없음)'를 말합니다.

오온개공(오온이 모두 공이다)라는 것은

'유가 곧 무이다.'라는 것과 같습니다.


오온개공은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색(色,물질)은 모두 공이라는 뜻입니다.

반야심경에는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라고 나옵니다.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인데,

수상행식도 마찬가지로 그러하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색 대신에 수상행식을 대입할 수 있습니다.


즉시공 공즉시

즉시공 공즉시

즉시공 공즉시

즉시공 공즉시

즉시공 공즉시


이 5가지를 합쳐서 '오온개공'이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모든 것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라고 깨달으셨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깨달음을 얻으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 '즉(卽)'의 2가지 의미


인생에 나타나는 모든 깨달음은 유무력의 법칙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고정된 실체가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일 때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은 처음에 '고정된 실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삶(오온)을 계속 관찰하다보니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신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있는 줄 알았는데, 고정된 실체가 없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신 것입니다.


처음부터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알고 있었다면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란 지금까지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말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또는 지금까지는 그렇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라고 깨달았다고 해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그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삶이 내 뜻대로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그 깨달음과 반대의 생각을 하고 있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진짜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것이 더 확실하구나.'라고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2가지의 생각이 섞여 있었던 경우입니다.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일부만 있고,

'삶이 내 뜻대로 될 것이다.'라는 생각도 일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위와 같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깨달음과 반대의 생각을 기존에 하고 있었기에

그 깨달음을 얻게 되는 흐름을 갖습니다.


나에게 어떤 물질이 있어서 기쁨이 느껴졌고,

그 물질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 물질이 사라짐으로써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색즉시공'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그것이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 있을 것이라 생각할 때,

그것이 계속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어떤 물질이 없었고,

영원히 나에겐 그 물질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좌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물질이 나에게도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즉시색'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그것이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 없을 것이라 생각할 때

그것이 계속 없는 것이 아님을(생겨나게 됨을) 깨닫게 됩니다.


일본의 미술평론가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즉(卽, 곧 즉)에 성불(成佛, 깨달음)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문광스님의 탄허사상 한국학을 말하다 10회 참조)


첫 번째로,

위의 내용에 따라

'색즉시공 공즉시색'에서 '즉(卽)'은 '무조건적인 변화'를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색'에서 '공'으로 무조건 변화하고,

'공'에서 '색'으로 무조건 변화하고,

'있음'에서 '없음'으로 무조건 변화하고,

'없음'에서 '있음'으로 무조건 변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을 유무력의 법칙에서는 '유무력'이라 표현합니다.

'무'의 생각상태에 있을 때 '무'에서 '유'를 향하는 '유무력'이라는 힘이 자동발생하고,

그에 따라 '유'가 현실화됩니다.

'색'에서 '공'으로 자동 변화하기 때문에 '색이 곧 공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색'과 '공'은 동시에 존재하기도 합니다.

『시크릿을 찾는 유무력의 법칙』 파트1의 6장에서 말씀드린것처럼

'유'와 '무'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덕경에서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유'와 '무'는 서로 살게 해준다는 의미이고,

'유'와 '무'는 자석의 N극와 S극처럼 상대적으로만 존재합니다.

따로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색'과 '공'은 동시에만 존재할 수 있으므로

그것을 '즉(卽)'으로 연결해서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는 말이 있습니다.

'번뇌'와 '보리'는 서로 반대말입니다.

집착에 의한 마음의 갈등을 의미하는 '번뇌'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가

'즉(卽)'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번뇌'와 '보리'는 서로 동시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번뇌'의 상태에 있으면 자동으로 '보리'의 상태로 넘어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것이든 고정된 실체는 없으므로 고정된 번뇌 상태도 없게 됩니다.

고정된 번뇌 상태가 없으므로 번뇌의 상태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보리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음이 늘어나게 됩니다.

물론 본인 입장에서는 깨달음이 늘어나는 과정에 고통이 느껴져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을 제외한 상태로 우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면

인간은 자동으로 깨달음이 늘어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


관자재보살은 모든 것에 실체가 없음을 깨닫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매우 괴롭더라도

지금의 괴로움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괴로움은 어느정도 사라집니다.


그런데 '고통의 원인'이라는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아쉽게도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이 없음'의 상태 또한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괴로움도 영원하지 않지만, 괴로움이 없는 상태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괴로움이 없다면 앞으로는 괴로움이 발생하게 됩니다.

'무'는 '유'를 만들어냅니다.

'내가 지금 괴롭지 않구나. 너무 좋다.'라고 깨닫는 순간부터

서서히 괴로움이 나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유무력의 법칙에 의해,

내가 괴롭다고 생각할 때 괴롭지 않게 되고,

괴롭지 않다고 생각할 때 괴롭게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괴로운 것도 아니고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인 중도(中道)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괴로운 것인지 괴롭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상태입니다.

'나는 괴로운 상태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아니오.'라는 생각이 들고,

동시에 '나는 괴롭지 않은 상태인가?'라고 질문해도 '아니오.'라는 생각이 드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 있으면 됩니다.

괴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 와도 '원래 삶이 괴롭기도 한 것이지.'라고 생각하다보면 이러한 상태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괴로움이 0인 상태를 추구하다보면, 강한 괴로움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최근에 이가 아픈 적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도 당연히 이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붕 뜬 기쁨을 강하게 느끼면

어느새 이가 썩어서 강한 치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는 앞으로 이가 썩어서 아플 수도 있다.'라고 생각할 때 양치질을 소홀히 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최근에 이가 아픈 적이 없었으므로 앞으로도 당연히 이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현재의 괴로움이 사라지고, (붕뜬)기쁨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앞으로 치통을 겪게 됨으로써 괴로움이 생겨나게 됩니다.


반대로,

'나는 앞으로 이가 썩어서 아플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지금 괴로움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이가 썩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괴로움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양치질을 열심히 하게 되고,

이가 썩지 않게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발생하여

앞으로 이가 썩지 않음으로써 치통의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간단하게 말해,

이가 썩을 것 같아서 지금 괴로우면 이가 썩지 않게 되어 괴롭지 않게 되고,

이가 썩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 기쁘면 이가 썩어서 괴롭게 됩니다.

이에 대한 내용을 '평소의 기쁨 vs 결과의 기쁨'이라는 글에서도 이야기하였습니다.


반야심경에서 관자재보살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표현한 것은

'괴로운 것도 아니고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닌 상태'인 중도(中道)상태에 있게 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반야심경의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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