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본 사냥 컬렉션❹
o 사원 덕분에 사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o 후배 덕분에 선배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o 학생 덕분에 선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o 어떤 시험이든 떨어지는 사람 덕분에 붙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 서투른 글씨, 어설픈 문장도.
<덕분에>가 아닌 것은 이 세상엔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모두가 <덕분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다 미쓰오의 『덕분에』중에서
마음을 따스하게 하는 말, '덕분에'는 긍정적인 성취를 타인의 공으로 돌리며 감사와 너른 수용을 담습니다. 반면 '때문에'는 피해나 실패의 원인을 외부 요인에 전가하는 불평 섞인 변명으로 사용되곤 하지요. '좋은 일은 덕분에, 나쁜 일은 자업자득'이라는 울림 깊은 말과 달리, 오늘날 우리 세상에서는 '덕분에'보다 '때문에'라는 원망과 좌절의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일본의 서예가이자 시인인 아이다 미쓰오(相田みつを)의 2003년 초판본 희귀본 『덕분에』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덕분'으로 채워가는 삶의 의미와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정한 희망과 덕목을 선명하게 보여줄 것입니다.
일본의 예술가 아이다 미쓰오(1924~1991)는 단순히 글씨와 시를 쓰는 것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고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일상의 소소함부터 우주적 깊이까지 아우르는 그의 시는 역경 속에서도 감사와 희망을 길어 올리는 긍정의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삶의 모든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언어로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용기를 선사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삶의 지혜가 농축된 그의 서예 작품은 자유로운 필치와 먹의 농담, 여백을 통해 강렬한 생명력을 발산합니다. 투박하지만 정감 넘치는 붓결에는 선불교 철학이 스며들어,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구도자적 자세가 느껴집니다. 아이다 미쓰오는 이렇듯 온 생을 다해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붓과 글로 조용히 물었습니다.
10여 년 전 헌책방, 오래된 먼지 내음 속에서 아이다 미쓰오의 2003년 초판본 『덕분에』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절판된 지 오래된 이 희귀본은 빛바랜 서가 위에서 고요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옅은 한지 같은 표지 위, 단단한 붉은 테두리 안에 힘 있는 궁서 '송강가사체'를 닮은 "덕분에"라는 제목은 낡은 종이의 질감과 어우러져 숙연한 아름다움을 발산했습니다.
그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모습에 홀려 책을 집어 들자, 옆으로 빼꼼히 튀어나온 색색의 인덱스들이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손길을 거치며 사색의 흔적을 담았는지 웅변하는 듯했습니다. 책을 넘기자 기존의 정형화된 서예를 탈피한 회화 같은 다양한 형태의 구도와 이응노 화백의 문자 조형을 보듯 자유분방한 붓 터치는 일본 히라가나로 쓰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희귀본 속 진실한 고백 앞에서 저는 '바로 이거다'라는 직감적인 울림을 느꼈고, '덕분'의 가르침을 향한 희귀본 사냥을 주저 없이 시작했습니다.
아이다 미쓰오의 『덕분에』를 읽노라면, 이철수 작가의 판화에서 느껴지는 선(禪)적인 통찰과 허당 선생의 글처럼 해학과 번뜩이는 삶의 지혜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자연스레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이 책은 크게 <만남>, <부드러운 마음>, <부처님의 잣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미쓰오 작가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그 울림의 시작을 함께 느껴보시지요.
<그 사람>
그 사람이 간다면 / 나는 안 간다 /
그 사람이 간다면 / 나도 간다 /
그 사람 / 그 사람 /
나는 어떤 그 사람인가
어떠신가요? 직장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그 사람'들의 유형을 종종 마주합니다. 누군가가 회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참석 인원이 절반으로 줄거나 행사가 아예 취소되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그 사람'의 참석 소식에 예정된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기꺼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지요. 짧지만 이 시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와 존재의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져줍니다.
첫 장에서 아이다 미쓰오는 <버림>이라는 글을 통해 불필요함을 덜어내는 지혜를 이야기합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은
없는 것이 좋지—
이 短歌(단가)의 아래 句(구)는 필요가 없는데…”
작가가 단가 모임에 갔을 때, 다케이 데쓰오 노스승은 단가 중 둘째 행-‘없는 것이 좋지’라는 구절은 불필요한 구절이라 지적합니다. 이미 첫 행만으로도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데, 다음 구절은 군더더기, 즉 사족(蛇足)이라고 말합니다. 없어도 좋을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없어도 좋을 것'을 시로 쓴 작가의 문제를 간파한 노스승의 지적처럼, 그 교훈은 삶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본질에 집중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남에게만 완벽을 요구하는 우리네 모습에 작은 웃음을 선사하며, 진정한 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어서 <감동 가득>이라는 글은 서예 작품과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전합니다. '一生燃燒 (일생연소) 一生感動 (일생감동) 一生不悟 (일생불오)'라는 메시지를 통해, 작가는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에게 감동하고 또 스스로 감격하며 살아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이는 앙드레 지드의 시구처럼 삶의 매 순간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온전히 느끼는 태도, 즉 모든 것에 감동하는 '현자의 자세'로 이어집니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하루가 거기서 죽어 가듯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감동하는 자다."
마지막으로 <연근의 실>에서는 불교의 심오한 개념인 견혹(見惑)과 사혹(思惑)을 통해 인간 내면의 번뇌를 깊이 들여다봅니다. 작가는 담을 넘는 도둑질과 같은 큰 잘못(견혹)은 쉽게 물리칠 수 있지만, 타인을 시기하거나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마음(사혹)처럼 연근의 실 같은 끝없이 이어지는 사소한 번뇌가 진정 우리를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지적합니다. 이를 통해 눈에 보이는 큰 문제보다 내면에 숨겨진 작은 번뇌에 대한 꾸준한 성찰과 정진이 중요함을 역설합니다.
2장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부드러운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책은 마치 염라대왕의 심판 거울인 '정파리경'처럼 우리 삶의 행업을 비춰주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 <마음의 진정제>에서는 '사람에게 떠밀려 떨어지다'는 관음경 구절을 인용하며, 재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일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시구처럼, 고난 속에서 비로소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고 성장의 계기를 찾을 수 있다는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서 <불염오(不染汚)>라는 글을 통해 더욱 깊은 깨달음을 전합니다. 이는 어떤 것에도 물들거나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도겐 선사의 『정법안장』의 가르침을 빌려 항상 정진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특히 작가는 칭찬에 마음이 더러워진다는 역설적인 통찰을 보여주는데, 이는 비난이 분노를 낳듯이 칭찬 또한 우쭐거림이나 자만심을 유발하여 마음을 오염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진정한 마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성찰의 중요성을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잣대>라는 글에서 아이다 미쓰오는 우리의 가치 판단 기준에 의문을 던집니다. 인간은 득과 실, 승패, 유무 등 상대적인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고 이익을 좇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태도를 '저울질'에 비유하며 삶의 본질적인 경험과 자유를 방해한다고 지적하는 장면과 연결됩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화자인 '나'(두목)에게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이다 미쓰오는 이처럼 우리가 무엇으로 삶을 재고 있는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합니다.
<자문자답>이라는 글에서는 작가의 지극히 솔직한 내면 고백이 독자의 미소를 자아냅니다.
치켜세워 주면 / 우쭐해지고 / 험담을 들으면 / 화를 내는 나 /
글 제목처럼 작가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지요. "자네는 오랜 세월 대체 무엇을 깨달았나?" 그리고 스스로 답합니다. '욕망과 번뇌가 한없이 깊은 나를 깨달았다.' 다음 대목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작가는 자신을 돌이켜보며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고민을 덧붙이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나이가 들었어도 미녀에게 약하고 정이 많은 편인 나 자신을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달았다.' 도겐 선사의 『정법안장』으로 자신을 닦는 구도자적 태도 속에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인정하는 유쾌하고 진실한 태도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마지막으로 <내게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어디에 있는지를 성찰합니다. '내 뒷모습은 내게 보이지 않지'라는 구절은 미셸 투르니에의 에세이 『뒷모습』에서 '뒷모습이 진실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본질적인 역량과 모습은 오히려 타인의 시선, 즉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겸손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줍니다. 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타인의 시선을 통한 자아 발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대목입니다.
이렇듯 『덕분에』의 각 장은 우리 삶을 성찰하게 하는 감동적인 구절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책의 말미에 실린 <실패한 덕분>이라는 글은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실패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우리는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원인과 책임을 돌리거나 좌절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넘어졌기에, 실수 덕분에 이렇게 오늘의 내가 있다"라고 말하며, 실패마저도 감사해야 한다는 놀라운 통찰을 건넵니다. 긍정적인 일에만 '덕분에'라며 감사하고, 실패는 나쁜 것이라 여겨 남을 탓하기 쉬운 우리에게, 작가는 실패마저도 자신의 성장을 돕는 귀한 거름으로 삼는 마음가짐을 가르쳐 줍니다.
아이다 미쓰오의 2003년 초판본 『덕분에』는 단순한 독서 경험을 넘어, 우리의 삶을 긍정의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진정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책사냥꾼님의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듯, 많은 독자에게도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