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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찾아서: 나의 희귀본 탐험기

by 책사냥꾼 유은



"나는 어떤 얼굴 시뻘건 어른이 살고 있는 별을 하나 알고 있지.

그 사람은 꽃향기를 맡아본 일도 없고, 별을 본 일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 본 일도 없어. 더하기 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어

......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버섯이야"

-『어린 왕자』중에서




1. 책에서 찾은 '제철 숙제'의 영감


김신지 작가의 『제철 행복』이라는 책을 보면 계절별, 24 절기별로 그 시기에 꼭 경험하면 좋을 활동들을 ‘제철 숙제’라는 이름으로 제시합니다. 그 아이디어가 무척 신선하고, 단순한 경험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의미로 이어진다는 생각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책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숙제' 또한 삶과 세상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안겨줄 것이라 확신합니다.

가을철 '제철 숙제' 중 하나는 숲길에서 달콤한 향기의 계수나무를 발견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말, 저는 지인들과 송도공원을 걷던 중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노랗게 물든 계수나무를 발견하며 이 숙제를 우연히 완성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 순간, ‘제철 숙제’처럼 책을 통해 얻는 ‘책 숙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번뜩 스쳤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주저 없이 『어린 왕자』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특히 제가 아끼는 한 희귀본 『쌩 떽쥐뻬리 연구』속 《어린 왕자》를 펼쳐 책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보는 저만의 책 숙제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2. 나의 '책 숙제' 시작: 『어린 왕자』 속 미스터리


제가 드리고자 하는 책 숙제는 간단합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어린 왕자』를 펼쳐 다음 세 가지를 찾아보는 것입니다. 아마도 집집마다 서재에 한두 권의 『어린 왕자』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린 왕자』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요?


첫 번째 과제는 4장에서 천문학자들이 별을 발견할 때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어른들은 아주 작은 행성을 발견하면 이름 대신 번호를 붙이기를 좋아한다는 내용이 나오죠. 어떤 책에는 ‘소행성 325호’, 또 어떤 책에는 ‘소행성 3,251호’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에는 몇 호로 나와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두 번째 과제는 6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지는 해 바라보기를 좋아하는 어린 왕자가 의자를 몇 발짝 옮겨 여러 번 일몰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떤 책은 ‘44번’, 다른 책은 ‘43번’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에서는 몇 번으로 기록되어 있나요?

세 번째 과제는 2장, 어린 왕자가 비행기 조종사에게 양을 그려달라고 하는 장면입니다. 조종사가 그림을 보여주자 어린 왕자는 “잘 봐, 이건 내가 원하는 양이 아니라 00이야. 뿔이 달렸잖아.”라고 말하는데, 책마다 ‘염소’라고, 또는 ‘숫양’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책에는 무엇이라고 적혀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물론 이러한 작은 차이들이 『어린 왕자』를 읽고 감동을 느끼는 데 커다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득, 궁금증이 샘솟습니다. 왜 책마다 이런 미묘한 차이가 생기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제가 이 희귀본 탐험기를 쓰게 된 근원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3. 숨겨진 역사, 그리고 진실: 판본 차이의 근원


이러한 궁금증은 황현산 선생의 글을 읽다가 명쾌하게 해소되었습니다. 해방 후 원전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일본어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겼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가 아닌 미국에서 1943년에 먼저 발간되었습니다. 생텍쥐페리가 미국에 머물던 1943년, 뉴욕의 레이날 앤드 히치콕 출판사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로 처음 발간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작가는 미국에서 두 개의 원고를 작성했는데, 하나는 손으로 쓴 원고로 뉴욕의 피어폰트 모건 라이브러리에, 다른 하나는 타자기로 작성된 원고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생텍쥐페리가 1944년 전사한 후, 1946년 프랑스의 갈리마르 출판사가 프랑스어판 『어린 왕자』를 출간할 때 이 타자본 원고를 참고했습니다. 갈리마르판은 타자 과정에서의 오류였는지, 혹은 다른 의도가 담겨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소행성 325’를 ‘소행성 3,251’로 적고 있습니다. 이 프랑스어 텍스트는 한국 대학에서 교재로 자주 사용된 1979년의 ‘폴리오 주니어’ 판에서도 그대로 사용되었고, 20년 동안 여러 판본에서 유지되었습니다. 갈리마르 출판사가 1999년 생텍쥐페리 전집을 낼 때, 편집자는 1943년 뉴욕판이 작가 본인이 직접 참여한 원본이라는 이유로 ‘원본 복원’을 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소행성은 325호가 맞고, 일몰횟수는 44회, 비행사가 잘못 그려서 어린왕자에게 준 그림은 '염소'가 아니라 '숫양'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는 사실입니다.



4. 우리말 번역 『어린 왕자』, 그 고난의 역사 속에서


현재 『어린 왕자』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사랑을 받으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방대한 수의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 전쟁이라는 시대적 아픔 속에서 어린이 문학 번역이 다소 늦춰진 감은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응렬 교수의 노력으로, 1956년 조선일보에 44회에 걸쳐 번역본이 연재되었고, 1960년 동아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소개된 것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이는 혼란의 시기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문학적 토양을 가꾸려는 귀한 노력이자, 아이들에게 꿈과 상상력을 선물하려는 선구자들의 숭고한 염원이었습니다. 1960년 동아출판사판 이후 제가 파악한 어린왕자 출판본은 1970년대 이후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5. 나의 희귀본, 그 특별한 가치와 발견


특히 제 서재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어린 왕자』는 1971년 발간된 문학 평론집 『아동문학사상』 시리즈의 여섯 번째 『생텍쥐페리 연구』에 삽입된 완역본입니다. 제가 이 책을 '희귀본'이라 부르는 이유는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넘어섭니다. 빛바랜 표지와 손때 묻은 페이지들, 그리고 큼직하게 찍힌 ‘1989년 12월 29일 구입’이라는 제 펜글씨가 젊은 날, 이 책과 함께해 온 역사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저는 과거의 저와 현재의 제가 조우하는 경험을 합니다. 책은 그렇게 저의 시간과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습니다.

60~70년대를 이재철 아동문학가는 ‘아동 문학의 정리형성기’로 보았으며, 『아동문학사상』 시리즈는 한국 아동문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고 보았습니다. 『생텍쥐페리 연구』와 같이 작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서가 체계적으로 출간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문화 활동입니다. 안응렬, 김봉구, 민희식, 김병익, 법정 스님, 이경희 등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참여하여 문학 평론집으로서 깊이를 더했습니다. 제 손안에 든 『생텍쥐페리 연구』는 이 중요한 흐름 속에서 『어린 왕자』의 가치를 재조명하려 했던 우리 문학계의 노력을 담고 있는 증거이며, 저에게는 우리 문학사와 함께 숨 쉬는 유산을 보듬고 있다는 깊은 자부심을 안겨주었습니다.


6. 희귀본이 말해주는 것: 발견의 기쁨과 아쉬움


그토록 아끼는 저의 1971년 안응렬 번역 『어린 왕자』 완역본을 펼쳐 ‘책 숙제’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습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낡은 종이의 향기와 함께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드는 듯했습니다. 답을 발견한 순간은 흡사 오래된 보물지도 속 단서를 찾아낸 탐험가와 같았습니다. 수십 년의 시공간을 넘어 작가와 대화하는 전율, 그리고 역사 속 번역자들의 고뇌가 글자 한 자 한 자에 스며 있는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발견한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2장에서는 '숫양'으로, 4장에서는 '소행성 3251호'로, 6장에서는 일몰 횟수가 '43회'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발견은 단순한 확인을 넘어, 제가 읽어왔던 수많은 『어린 왕자』들과 제 소장본이 이어지는 역사의 한 지점을 깨달은 전율이었습니다. 이는 모두 1946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간행된 프랑스어 원본을 직접 번역한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한 반전이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2013년 《동서문화사》에서 발간된 안응렬 번역의 『어린 왕자』를 보면, 한참 뒤에 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소행성 325번과 일몰 횟수 43회는 1971년판과 동일하게 유지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71년판에서 ‘숫양’으로 올바르게 번역되었던 부분이, 2013년판에서는 ‘염소’로 다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깊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오역을 넘어, 마치 오랜 시간 공들여 다져놓은 번역의 퇴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번역이란 완벽한 정답이 없는, 시대의 요구와 번역자의 해석이 끊임없이 씨름하는 과정의 연속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습니다.



7. 에필로그


이번 ‘책 숙제’는 『어린 왕자』가 단순히 인쇄된 글자를 넘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수많은 해석과 번역을 거쳐 재탄생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판본마다 발견된 미묘한 차이들은 언어와 문화, 번역자의 시선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의미의 지층과도 같았습니다. 저의 낡은 희귀본 『어린 왕자』는 제게 단순한 옛 서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저에게 깊은 통찰과 감동을 전하며, '진정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의 메시지처럼, 책 속에 숨겨진 삶의 지혜와 문학의 역동적인 숨결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이 작은 책 한 권을 통해 제가 발견한 것은 비단 판본의 차이뿐만이 아닙니다. 문학 작품이 세대를 넘어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각자의 '책 숙제'를 통해 자신만의 '어린 왕자'를 찾아가도록 이끄는 무한한 생명력이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서재에 잠들어 있는 『어린 왕자』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속삭여주고 있을까요? 지금 바로 그 책을 펼쳐, 당신만의 '책 숙제'를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 속에서 분명 새로운 발견과 감동을 경험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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