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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걷기

살리고 싶었지만 살릴 수 없었던 순간

by 서가앤필

1.

살리고 싶었지만 살릴 수 없었던 순간


결혼 8년 만에 찾아왔지만 결국 임신 24주에 보내줘야 했다. 심장이 멈춘 아이도 출산하는 것처럼 낳아야 한다고 했다. 잠시 잠들었다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기를 바랐는데... 그럴 수가 없단다. 결국 보내는 것도 내 힘으로 해야 했다. 정신줄을 잠시 놓고 싶었지만 신랑을 생각하면 그래선 안 될 일이었다. 억지로라도 붙들어 매야 했다.


13주에 처음 태아가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가 아프던지 심장이 뛰는 생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뱃속 태아가 건강하지 않다는 진단을 병원 7곳에서 들었지만 24주가 될 때까지 한 번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면 끝까지 현실이 아니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24주가 되던 날, 신랑은 출근하고 혼자 조용히 책을 읽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병원을 가야 하는 날이 아니었는데 왠지 오늘은 병원을 들려야 할 것만 같았다. 평소가지 않던 집 앞 산부인과엘 들렀다. 한 번도 혼자 산부인과엘 간 적이 없었는데 하필 신랑이 지방으로 교육을 간 날이었다. 혼자 가 보기로 했다.


심장이 멈추었다고 했다. 언제든지 괜찮다고 생각하며 맘먹고 있었는데 하필 오늘... 신랑 없이 나 혼자 있는 오늘 심장이 멈췄다. 의사 진단을 받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한 번도 운 적 없었는데...


아무도 없는 차 안이니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동안 애써 참은 눈물까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널 포기할 수 없었는데 네가 먼저 날 포기해 줘서 고맙다'는 말이 입에서 나왔다. 그동안 건강하지 않은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하던 내 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출산을 위한 진통은 다음날 아침이 될 때까지 13시간이나 이어졌다. 배가 너무 아프다며 간호사를 불렀더니 평소 생리 때 아픈 것보다 10배가 아프면 부르라고 했다. 10배라니... 전혀 예측이 되지 않았다. 유도분만제를 맞아서 그나마 시간은 빨라질 거라 했다. 밤을 꼬박 진통하고 해가 떠서야 수술실로 옮겨졌다.


내 힘으로 밀어내라고 했다. 난 출산을 해도 엄마가 될 예정이 아닌데, 날 엄마라고 부르는 수술실 관계자들이 참으로 무심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 자신이 처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멈춘 아이를 낳았다. 마취도 하지 않아 온전히 느끼고 들었다.


출산 후 나는 입원실로 이동되었고 아이는 박스에 담겨 신랑에게 전해졌다고 했다. 박스에 담긴 건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시신이었다. 입원실은 출산한 산모들이 없는 1인실이었다. 1박에 48만 원이었다.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혼자 있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인실 병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감이 들었다. 출산은 했지만 아이 없는 병실에서 3일을 더 있다 신랑과 엄마와 퇴원을 했다.


2.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엄마는 일주일 내내 미역국을 끓여댔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잘도 받아먹었다. 신랑은 무얼 하는지 바빠 보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신랑은 나를 엄마에게 맡기고 박스에 담긴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고 했다. 병원 장례식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아서 상조회사를 알아봤다고 했다.


사망진단서로 집 근처 화장장에서 받아주었다고 했다. 나중에 받아본 사망진단서에는 내 이름만 있었다. 신랑 이름은 없었다. 낳은 사람은 있지만 출생신고를 한 적이 없으니 부모는 없는 상태였다. 슬픈 드라마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점점 멍해져 갔다.


3.

엄마가 집 앞 공원으로 걸으러 나가자고 했다.


하루 3끼 미역국만 먹으며 일주일이 넘어가던 날이었다. 엄마가 집 앞 공원으로 걸으러 가자고 했다. 싫다고 거부할 의욕도 없어서 그냥 조용히 옷을 입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 앞 신호등을 건너자마자 공원 길이 나타나는데 그날따라 낯설게 느껴졌다.


살고 있는 집, 집 앞 상가, 집 앞 공원, 집옆 카페, 건너편 과일가게까지 주변 환경은 바뀐 게 없는데 모든 게 새롭게 다가왔다. 갑자기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꽈악 잡더니 조금 빠른 걸음으로 내 몸을 당겼다.


평소 엄마와 난 살가운 관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사이가 아주 나쁜 것도 아니었다. 공감보단 책임감에 가까운 관계였다. 엄마가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고 걷기를 시작했다. 딸 집에 몇 번 와보지 않아서 모르는 길일 텐데 엄마는 딸 손을 잡고 잘도 걸었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려 했다. 울컥하는 걸 참으며 못 이긴 듯 엄마 손에 이끌려 걸었다.


4.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땐 걷기


요즘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엔 그냥 걷는다. 걷다 보면 그날이 떠오른다. 눈에 초점은 없고 정신은 반쯤 나가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날 이후 매일 걸었다. 엄마는 일주일 동안 딸 미역국을 끓여주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다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신랑이 출근하고 혼자 남은 나는 엄마와 걷던 길을 계속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걷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평소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주체를 할 수 없던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없다니...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걸었을 뿐인데 조금씩 앞으로 나갈 용기가 났다.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을 용기는 원래부터 없었지만 이제 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걷고 또 걷다 복직을 했다.


다행히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천천히 상태가 좋아졌다. 처음에는 직원들이 간식을 먹자고 해도 가지 않고 내 자리에 있었던 내가 어느 순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하기 싫은 행동은 하지 않고 나 자신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천천히 놔둔 덕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 함께 하던 동료들이 지켜봐 주고 기다려준 덕분인 것 같다.


요즘에도 난 자주 걷는다. 헬스장 가기 싫은 날, 책 읽기 싫은 날, 그렇다고 마냥 쉬기도 싫은 날, 그런 날이 나에겐 걷는 날이다. 발을 움직여 걷다 보면 그날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괜찮지?'라고...



*관련 책 - <걷기의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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