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년 동안 남편은 쳐다만 봤다.
마누라가 헬스에 빠져 바프를 찍네, 자격증을 따네 해도 자신의 저녁 루틴을 고수하는 스타일이었다. 저녁 루틴이라는 게 별건 없었다. 마누라보다 매일 2시간 이상은 일찍 퇴근하니 빨래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조금 해 두고 TV와 물아일체가 되곤 했다.
물론 방관자 스타일은 전혀 아니었고 마누라가 바프를 찍는 날엔 운전기사 역할을 충실해 주었고, 자격증 시험을 치를 땐 방통대와 한국체육대학교까지 따라다니며 학부모 역할도 완벽히 해 주었다. 그러니 헬스를 같이 하자고 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매일 눈빛이나 태도로 '네가 헬스가 그렇게 좋다면 그냥 너 혼자 즐겨주면 안 되겠니?'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단 조절하고 있는 마누라를 전혀 개의치 않고 이거 시켜 먹자, 저거 먹으러 가자고 할 때는 정말이지 속으로 참을 인(忍) 자를 몇 번 써 내려가야 했다.
2.
그러다 어떻게 남편도 헬스인이 되었을까?
순전히 돈 때문이다. 원래도 가성비를 따지는 남편이었기 때문에 PT를 받으며 몸이 좋아지고 있는 아내의 모습은 전혀 자신에게 와닿지 않았을 수 있다. 남자들의 성향상 '운동을 왜 돈 주고 배워'라는 생각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돈을 내주겠다고 했다. 내 복지카드 1년 치를 당신의 운동에 투자하겠다. 생각 있냐? 했더니... 기회를 놓치지 않는 우리 남편 대번에 덥석 물었다.
나도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헬스장에 입성시키는 방법. 나 또한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돈 투자로 할 수 있는 투자가 가장 쉬운 투자인지 모른다. 하물며 돈 주고 건강을 살 수 있다면 배우자를 위해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막상 남편은 하겠다고 말은 해 놓고서는 망설이는 듯 보였다. 성향상 새로운 무언가를 한번 시작하기는 어려워도 막상 하기 시작하면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도 살짝 겁이 났던 것 같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이면 자신도 빠져들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라고 할까...
3.
<생활체육과 시>엔 무동력 트레드밀 위에서의 단상이라는 챕터가 나온다.
2년 동안 남자들이 더 많은 공간인 헬스장을 드나들며 나 또한 트레드밀 위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동안 해 온 생각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정리했다면 나는 시집이 아니라 300페이지의 산문집 한 권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근력운동을 한 뒤 마무리 운동으로 트레드밀 위에 올라서서 한 생각이란 주로 남편 생각이었다. 생각은 딱 2가지 종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는 어떻게 하면 남편도 근력운동을 하게끔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래도 억지로 하게끔 하면 안 된다 라는 감정 절제에 대한 생각이었다.
헬스장을 혼자 왔다 갔다 하는 2년 동안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확실한 생각은 어떤 경우에든 '해라' '왜 안 하냐?'라는 부정의 방법을 써 서는 안 되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의 표현이라던지 '당신도 하면 멋있을 것 같다' 등의 긍정 방법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4.
2년이 다시 흘렀다.
나 혼자 헬스장을 다닌 지는 5년 차가 되었고 신랑과 함께 다닌 지는 2년 차가 되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내가 끊어 준 PT 30회를 꽉 채우고는 남편 스스로 더 빠져들어서 자기 월급에서 주 2회 PT를 받아가며 몸을 변화시키고 있다.
2년 전 침대에 누워 리모컨 하고만 놀고 있던 신랑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일정 없는 주말이면 헬스장을 함께 가서 2시간씩 운동하고 오는 게 이제 우리 부부의 가장 즐거움이다. 가끔 생각한다. 어떻게 마누라가 헬스에 빠져 2년을 혼자 헬스장을 다니는데도 관심이 없을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바프도 찍고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따 보겠다며 공부하는 남편의 모습보다 그 당시 무심하던 모습이 더 신기하기만 하다. 아무래도 책으로 사람이 변하는 것보다는 운동으로 변하는 것이 더 빠르고 더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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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책 - <생활체육과 시> 희한한 시집을 발견했다. 아니 희한한 제목의 시집을 발견했다. 생활체육과 시라니.. '체육체육'이란 단어와 '시'란 단어가 나란히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본 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