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빠는 백수다.
하지만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난 후 백수생활이니 요즘 누구보다 노년을 맘껏 즐기고 있다. 어릴 적 아빠를 생각하면 출근길 아빠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것도 자주. 선명하게.
출근할 때면 테니스채가 꽂힌 백팩을 매일 메고 나갔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될 때까지 아빠 출근 모습은 한결같았다. 시간은 남들보다 1~2시간이 이른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아빠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전 테니스장에 들러 지인들과 경기를 한 후 샤워를 하고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기 때문이다.
2.
남들 아빠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20년 된 운동 종목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직장인이 되어보고서야 그게 얼마나 대단한 습관인지 깨달았다. 20년을 직장생활 출퇴근만으로도 채우기 어려운데 평생 나만의 운동 종목이 있다는 사실이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있는 루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 책표지에는 이런 무시무시한 문장이 쓰여 있다.
"지금 무심코 하는 행동이 20년 후 나의 질병 목록이 되어 나타난다."
오늘 무심코 한 나의 행동들이 20년 후 질병 목록이 되어 나타난다니 깜짝 놀라 내 습관들을 둘러보게 된다. 그러면서 아빠가 또 생각났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앉고 몸을 좌우로 돌려 스트레칭을 하던 모습말이다.
엄마는 아빠를 평생 깨워본 적이 없다며 가끔 칭찬하곤 했다. 아빠 칭찬에는 인색하던 엄마도 아빠가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모습은 믿음직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가끔 술 마시고 동네 시끄럽게 집으로 입장할 때면 칭찬하던 엄마는 온데간데없고 다시금 표독스러운 아내로 바뀌곤 했지만...
4.
아빠는 한 번도 테니스를 권한 적이 없다.
테니스를 평생 쳐온 아빠였지만 삼 남매에게 테니스를 권한 적은 없었다. 오빠 고등학생 때 살짝 한번 레슨을 시켰지만 오빠가 잠깐 배우고 관심 없어하니 더 이상 시키지는 않았다. 아빠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운동 종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아빠가 운동관련해서 자주 하는 말은 있었다. "어떤 종목이던지 운동은 꼭 매일 하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했다. 딸이 직장인이 된 이후에는 기회가 될 때마다 더 자주 말했다. 운동에 관한 한 몸소 실천하고 있는 아빠였기 때문에 허투루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운동을 생활화한 아빠 모습이 실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것이 좋아 보이기도 했고 술을 아무리 먹어도 다음날 아침이면 벌떡 일어나서 테니스채를 꼽은 백팩을 메고 출근하는 모습은 어린 나이의 내가 보기에도 아빠의 체력은 운동 덕분인가? 싶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은 명절에 만날 때면 탁구장을 갔다. 부부끼리 편을 먹고 치다가 밥값 내기를 하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부모님과 산 세월보다 함께 살지 않은 세월이 더 길어지고 보니 이제야 우리 가족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어쩌면 우리 가족은 예전부터 생활체육 가족이었나 보다. 일명 생체가족.
어쩌면 요즘 우리 부부가 '헬스 하는 부부'로 불리는 건 대를 건너 이어져가고 있는 자산인지도 모르겠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운동습관'이라는 가장 큰 자산말이다.
*관련 책 -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