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팀장이 되기 전 마지막 팀원일 때 일이 많은 부서에서 근무했다.
일이 많다고 읽던 책이 안 읽히진 않았다. 오히려 책 몇 장이라도 봐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던 시기였다. 새벽 일찍 출근하거나 야근하기 전 주문한 김밥을 기다리며 책을 펼쳤다. 주로 보던 책은 심리학 책이었다.
일이 많다는 건 그만큼 많은 내부 직원들과 얽혀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던 시절이었다. 하루에도 사내 메신저로 수십 통 업무 질문이 오갔다. 메신저로 건네오던 질문에는 예의를 미처 장착하지 못한 직원의 질문도 있었고, 간단한 검색조차 안 해 보고 질문하는 직원들도 꽤 있었다. 질문을 받는 입장에서 같은 내용의 답변이나 문득문득 욱 하고 올라오는 질문들을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때였다.
책도 책이었지만 일주일에 3번 있는 요가도 빼놓지 않고 갔다. 요가는 운동이라기보다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라도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무언가 몸에 꽈악 쌓여 암덩어리로 변해 버릴 것 같은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2.
몸보다 마음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마음은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심리학을 대학원까지 가서 공부하기로 맘을 먹은 건 순전히 그래서였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대학원 공부는 취미로 읽던 심리학, 정신분석학, 철학책들보다 나의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했다. 물론 궁금해하던 석사 과정에 대한 호기심은 채워졌지만 '무언가 인생이 한발 앞으로 나아갔구나'라는 청명한 기분은 들지는 않았다.
3.
<마인드짐센터>라는 책에서는 '정신을 위한 운동'과 '몸을 위한 운동' 사이에는 5가지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첫째, 운동을 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헬스클럽에 처음 가면 코치가 다가와 특별히 몸의 어떤 부분을 향상하고 싶은지 물어본다. 체중을 줄인다거나, 체력을 키운다거나, 건강해지기를 바라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신을 위한 운동도 이와 비슷하다. 스트레스 해소법을 키우고 싶다던지, 문제 해결 방법을 찾고 싶다던지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단련하면 된다. 각자 필요한 부분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옆 사람의 목적보다 내 목적을 찾았다면 그게 정답이다.
둘째, 한 가지 운동은 다른 운동에도 도움이 된다. 가령 단단한 복근을 갖고 싶다고 하자. 복근을 위한 운동을 하다 보면 등까지 좋아진다. 반대편 근육이 협력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협력근은 주동근을 도와서 협동해 함께 키워지는 근육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방법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알 수 있게 된다. 관계문제가 풀리는 건 당연하다.
셋째, 어려운 시기를 버틸 힘이 생긴다. 근력 운동을 하다 보면 몸이 건강해져서 야근을 하더라도 피로를 덜 느끼게 된다. 회복되는 시간도 단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제어하는 방법을 알게 되면 가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스스로 제어하는 할 수 있는 요령이 생긴다.
넷째, 노력하는 만큼 결과가 나온다. 운동을 하는 사람은 몸 밖에 정직한 게 없다고 하지만 마인드 훈련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노력하고 실천하는 만큼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마인드 훈련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에 걸맞은 명상이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글쓰기를 추천한다.
다섯째, 누구나 할 수 있다. 나이, 성별, 학력, 체력, 종교, 직업에 상관없이 운동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자신의 마음 훈련 또한 마음을 먹은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쉽지만 가장 넘기 힘든 장애물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일테니까...
4.
몸이 먼저다.
그동안 심리학, 정신분석학, 철학책들을 먹방 하듯 먹어치웠기 때문이었을까? 살기 위해 움직이던 생존 요가는 인생에서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을까? 분명 쓸모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내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바꿔준 계기는 분명 몸속 근육에 집중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동안 읽던 책들과 혼자 해 오던 마음 훈련들은 나의 세포들 어딘가에 남아 나의 삶으로 나타내 줄 것이라 믿는다. 철없던 내가 조금이나마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변했다면 다분히 그동안 글로 만나준 작가들의 공이 크다.
하지만 나는 이제 정신을 위한 운동보다 몸을 위한 운동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50대를 몇 년 앞두며 더욱 드는 생각이다. 책 보다 덤벨 드는 시간을 늘리기로 맘먹었다. "딸~ 밥을 3끼 먹었으면 1끼는 운동을 먹어야 해"라고 말하던 엄마의 말처럼 나는 매일 일과에 운동을 넣기로 했다. 습관으로 녹여내야만 가능하다는 걸 그동안의 수많은 실패가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질 때마다 난 헬스장이 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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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책 - <마인드짐센터> 짐은 짐인데, 마인드짐이란다. 헬스장은 아니고 심리상담소에 가깝다. 나중에 내가 무언가를 하게 된다면 짓고 싶은 이름이다.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마인드짐>이라고 이름 짓고서는 몸으로 마음이 좋아지는 법을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