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영화 <은교>에 나오는 대사다. 소설이 아닌 영화로만 접한 나에게 이 대사는 남자 주인공 박해일의 말과 표정으로 기억된다. 노교수 연기를 워낙 잘 하기도 했지만 이 문장이 특히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그당시 들었던 나의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늙어간다는 것을 스스로 안타까워 하며 젊음을 부러워한다고만 생각했는데 결국 남자 주인공의 입에서 이런 멋진 문장으로 요약되었을 때 사실 조금 놀랐다. 한 문장 안에 삶을 관통하는 인생의 정수가 담겨 있는것 같았다. 이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혼자 되풀이해서 조용히 읊어봤던 기억이 난다.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하지만 나는 늙어가기보단 익어가고 싶다. 나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이 더 좋다. 젊음이라는 엄청 난 큰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난 지금이 더 좋다. 막연한 미래에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고 적당한 시행착오도 겪어서 일희일비하지 않을 수 있는 40대가 좋다. 여기저기 보수해야 할 몸뚱아리를 가지고 있지만 살살 관리하면서 살면 당분간은 큰 어려움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50대를 앞둔 나이에 이런 자신감을 보이는데는 이유가 있다. 한손엔 근력운동, 다른 한손엔 글쓰기라는 큰 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 8시간은 업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에 당분간 충분한 자유는 없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운동과 글쓰기가 뒷받침해 줄 예정이기 때문에 별 문제없이 잘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본업과 취미가 서로 맞물리며 시너지 효과를 내어 줄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2.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마라톤이 있다면 신경숙 작가에겐 요가가 있었다. <요가 다녀왔습니다>에서 그녀는 요가를 15년 동안 했다고 한다. 소설쓰기 외에 가장 오래한 일이 요가라고 하니 쏘울 취미였던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깊이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몰입하는건 소설로도 충분하니 한사코 초보 요기니의 상태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요가에 깊이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저 자력을 잃어가는 나의 몸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 라는 자기 위안에서 더 깊어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요가 생활을 해왔다는 생각. 아무것도 모른 채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야 이 세계 안쪽이 얼마나 깊은지를 실감했다. 내가 점점 더 요가를 좋아하는 것도 겁이 났다. 저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3.
목적없이 좋아하는 것을 갖기
그동안 여러가지 취미가 있었지만 취미가 본업이 되었던 건 아직 없다. 가끔 아니 자주 마음이 술렁술렁해서 본업을 놓고 취미세계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를 때도 있지만 하루만 지나면 금세 까먹곤했다.
피아노가 그랬고, 그림이 그랬고, 요가가 그랬고, 지금 헬스가 그렇다. 피아노를 배울 땐 피아노 선생님은 내가 피아노 선생님이 되었으면 했다. 미술학원에 다닐 땐 그림을 전공으로 하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나도 살짝 그럴까 생각했더랬다. 직장인이 되어 생활 요가인이 되었을 땐 가끔 상상했다. 내가 요가 강사가 되면 어떨까 하고...
지금은 헬스에 빠진 지 5년차다. 헬스에 무섭게 빠지던 초반 트레이너 선생님은 날더러 언제 운동세계로 넘어올 거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해부학도 재미있어하고 자격증도 땄으니 직업을 전향해 트레이너가 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기는 했다. 내가 봐도....
하지만 난 취미는 취미로 남겨두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본업처럼 두고 하루종일 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드는 날도 분명 있다. 하지만 진짜 좋아하는건 목적없이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다. '자격증도 땄으니 헬스장 차리면 되겠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아졌지만 오늘도 난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린다. 목적없이 좋아하는 것을 사수하기 위해서다.
4.
헬스하는 70대 할머니
지금 5년째 하고 있는 헬스는 딱 70대까지만 해 볼 생각이다. 70대까지 근력운동을 계속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요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하는 할머니가 종종 뜬다. 다른 사람 영상 보는 것에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는 나도 헬스하는 70대 언니들 모습에는 그렇게 눈이 돌아갈 수 없다. 요즘 나의 롤모델은 이름도 사는 곳도 모르는 70대 헬스녀다. 롤모델을 정했으니 이제 나도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관련 책 - <요가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