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벚꽃이 눈꽃처럼 휘날리던 날이었다.
오늘 퇴근하고 뭐 하냐고 옆 팀장이 물었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 낮은 목소리로 "오늘요? 오늘은 하체 하죠"라고 했다. 벚꽃이 만개한 날이니 퇴근 후 어디 좋은 곳에 꽃구경 가는 거 아닌가 하고 물어봤다가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하는 표정이다.
몇 년 전부터 벚꽃이 만개한 날은 하체 운동을 하는 날로 정해두었다. 왜냐하면 남들이 꽃구경 가느라 헬스장이 텅텅 비는 날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오래 붙잡고 있기 힘든 스미스머신에서 이것저것 맘 편히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스미스머신은 헬스장에 몇 대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두 동작을 3세트씩 한 후에는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게 보이지 않는 룰인데 벚꽃 계절엔 헬스장이 한산해져서 은근히 기다려지는 시기다. 남들이 꽃구경을 가 한산해진 헬스장에서 스쿼트나 런지 같은 하체 운동을 해 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2.
하체 운동을 좋아하냐고?
물론 좋아하지만 매일 좋은 건 아니다. 그럼에도 짬이 날 때마다 하체 운동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하면 할수록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에서 손화신 작가는 글을 쓸수록 내가 된다고 했는데 나는 몸을 쓸수록 오롯이 내 자신이 되는 것 같았다.
특히 런지를 할 때다. 양손에 광배근을 고정시킬 무게 정도의 덤벨을 들고 한쪽 무릎씩 굽혀주는 동작을 할 때면 멀쩡한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몸이 흔들리는 건지 마음이 흔들리는 건지 살짝 헷갈린다.
어쩌면 나는 지금 몸이 아닌 삶의 균형감각에 이상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미세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머리속은 이미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내 속을 알 리 없는 트레이너 쌤은 무게를 한 단계 더 높여보자고 말한다. 쌤이 무게를 올리자고 하는걸 보면 몸은 비록 흔들렸지만 그래도 나름 자극 부위는 잘 잡은 것 같다.
몸은 삶의 내공에 앞서 운동 내공을 벌써 쌓아둔 듯하다. 바벨 무게를 한 단계 더 높여 바꿔 들고 나면 낮에 있었던 사무실에서의 고민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고민의 무게보다 덤벨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지금, 운동은 명상이 된다. 그리고 트레이너는 단순한 트레이너가 아닌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해 주는 인생 코치가 된다.
3.
결국 의미 찾기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에서 손화신 작가는 글쓰기를 의미 찾기라고 표현했다. 글을 쓸 때면 결국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에 대해,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쓰게 되는데 작가에게 글쓰기란 무엇에 관해 쓰는 결국 의미 찾기라는 것이다.
'의미를 품은 그 대상을, 나는 분명 사랑하고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니 의미를 찾는 건 우리가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누군가 내게 집을 주제로 글을 쓰라고 한다면 아마도 난 집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를 쓸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음악 안에서 의미를 찾고, 글을 사랑하는 사람은 글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나는 근력 운동을 시작하며 몸의 의미를 되새기기 시작했다. 그릇의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같다.
4.
몸을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
하체 운동은 오늘도 힘들었다. 둔근, 대퇴사두근, 종아리근육까지 자극하고 나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한 세트해 주고 목이 말라 정수기 쪽으로 이동하려 하면 두 발이 양방향으로 후들거린다. 누가 볼세라 얼른 복부에 힘주고 다시 하던 자리로 돌아와 무게를 하나 더 끼우고 나면 오묘한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이때가 딱 그만하기 좋은 순간이다. 혼자 운동하는 중이니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다. 바로 앞 기구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이 살짝살짝 쳐다보는 것 같기는 하지만 내가 몇 세트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때 머릿속에 두 사람이 등장한다. 왼쪽에 있는 사람은 충분히 했으니 그만하라고 하고, 오른쪽 사람은 '바로 지금이야'라고 하며 딱 2개만 더 해 보자고 한다.
왼쪽 사람말을 들을지, 오른쪽 사람 말을 들을지는 순전히 내 판단이다. 인생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했던가. 난 어제 왼쪽 말을 들었으니 오늘은 오른쪽 사람 말을 듣겠다며 2개를 더 해 준다. 멈추려고 하는 순간 2개를 더 해 준 경험. 오늘 이 작은 성공 경험이 내일의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 믿는다.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나는 근력 운동이 없는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됐다.
*관련 책 - <쓸수록 나는 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