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29(D+379)
삶의 마지막 순간, 괴테가 유언처럼 찾았던 것은 '빛'이다. "오, 조금 더 빛을 내게!" 그렇게 빛과 온기를 사랑했던 괴테였지만, 늘 일상에 온기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다. 그 어둡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이런 고백을 한다. "인간의 본성에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희망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때도 그 힘은 우리를 위로합니다."
나는 괴테의 이 말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온전히 쏟아붓는다는 것의 의미를.
예전에는 달랐다. 결이 맞지 않는 자리에도 꾸역꾸역 참석했다. 불편한 마음을 꾹 눌러 담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상대를 맞췄다. 그 시간들이 쌓여 어느새 피로가 되었다.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으면 허기가 밀려왔다. 배는 부른데 마음은 고팠다.
어느 날, 펜을 들고 문장을 옮겨 적기 시작했다. 필사였다. 한 글자 한 글자 손끝으로 따라가다 보니, 글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온전하게 살아라." 그제야 알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그날 이후 달라졌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자리는 정중히 거절했다. 무리 속에서 억지로 웃는 대신, 혼자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는 시간을 택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냉정하다"고.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냉정한 것이 아니라 온전해지고 싶었을 뿐이다. 관계를 정리하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정작 소중한 사람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지 못했다는 것이.
주말 부부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점심 시간이 지날 즈음 전화가 왔다.
"여보, 잘 지내지? 애들은 잘있고?"
"그럼, 잘 있지."
보통의 부부들처럼 아주 평범한 대화 몇마디만 오갔다. 사춘기를 한창 겪고 있는 아이들. 혼자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함께 나누고 싶었다.
'퇴근하고 전화할게.'
"그래."
퇴근 시간 전,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사고 소식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말들이 귓속으로 들어왔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단어들이 공중에 떠돌았다. 사고. 병원 이송 중.....
고작 몇 시간 전, 그와 통화했다. 평범한 목소리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왜 그때 말하지 않았을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왜 아이들 이야기를 미뤘을까. 바쁘다는 핑계로, 퇴근 후에 하자는 약속으로.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마음속에는 가득 남아 있었다. 나중은 오지 않았다.
온전히 쏟는다는 것은 행동만이 아니라 말도 포함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마음속에 담아둔 말은 말이 아니다. 소리 내어 전해졌을 때 비로소 온전해진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
후회는 지나간 시간이 만드는 게 아니다. 미뤄둔 순간들이, 온전하지 못한 대화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끼워 넣지 못한 진심이, 평범한 목소리 뒤에 숨겨둔 사랑이.
이제는 안다.
아침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신다.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다. 손바닥에 온기가 전해진다. 이 순간만큼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차의 온도, 창밖의 햇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책상 앞에 앉으면 온전히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문장 하나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쓴다. 손끝에서 단어들이 태어나고 사라진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한 번 정을 주기 시작하면 온전히 쏟는다. 상대의 말을 듣는다. 눈을 본다. 평범한 대화 속에 숨은 진심을 읽는다. 그리고 이제는 말한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망설이지 않고 전한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미루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누군가 전화를 걸어오면 받는다. 바쁘더라도 귀를 기울인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진심을 건넨다. 그 통화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걸 안다. 지금 이 대화가 다시 나눌 수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그렇게 온전히 산다.
괴테가 마지막 순간 빛을 찾았던 것처럼, 나는 매일 아침 창가에서 빛을 찾는다. 찻잔을 든 손에, 글을 쓰는 손끝에, 누군가와 나눈 대화 속에 어린 작은 빛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빛을 말로 전한다. 망설이지 않고, 미루지 않고.
온전함은 완벽함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쏟아붓는 것이다. 행동으로, 말로, 온기로. '나중에'를 약속하지 않고, '지금'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다. 평범한 대화 속에서도 진심을 전하는 것이다.
남편에게 하지 못한 말들은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 건넨다. 그가 듣지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고맙다는 말을, 이제는 소리 내어 말한다. 그것이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그것이 후회를 딛고 온전해지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 진심을 담지 못하면, 그 대화는 공허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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