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을 차에 태우고 오피스텔로 향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주차장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센스 있는 지인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오피스텔 안을 살펴보더니 와도 된다고 손짓을 했다. 그때 경비원 아저씨가 다가오셨다.
"어디 가세요?"
"303호 방문 왔어요."
"얼마나 걸리나요?"
"금방 나올 거예요."
"네, 그럼 주차비 안 내도 되니 다녀오세요."
인상 좋은 얼굴로 환하게 웃으신다. 아,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신기하다. 그분 웃음에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 상대를 기쁘게 한다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303호에서 내려와 주변을 좀 둘러봐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렸다. 조금 더 주차해야 할 것 같으니 주차비를 드리겠다고.
"그렇게 하세요."
아저씨는 여전히 웃으며 말씀하셨다.
주변 입지며 교통편이며 편의시설이며 이것저것 살펴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길가에서 콩나물을 파는 할머니가 우리를 세웠다.
"좋은 일 하는 거예요. 사 가세요."
애원하듯 간절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어찌 외면할 수 있을까. 지인과 나는 각각 이천 원어치씩 담아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콩나물을 담으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들 이야기, 며느리 이야기, 손자 이야기. "나도 부자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손이 눈에 들어왔다. 추운 날씨에 주름 패인 손이 꽁꽁 얼어 있었다. 순간 엄마 모습이 겹쳤다.
"자식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도 챙기세요."
"자식만 잘되면 돼요."
"할머니가 걱정 안 하셔도 자식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어요."
가방을 뒤적여 핸드크림을 꺼냈다. 할머니 손등에 듬뿍 짜 드렸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났다.
"배고파. 아까 칼국수집 보이던데 먹고 갈까." 지인이 말했다. 난감했다. 식단 조절 중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만큼은 양보해야지. 그래도 들깨칼국수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조선간장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오래된 집 특유의 정겨운 냄새다. 걸쭉한 들깨칼국수와 무생채, 배추김치가 정갈하게 나왔다. 직접 담근 김치라 맛이 다르다. 김치를 더 달라고 했다. 배추김치만 더 나왔다. 무생채는 안 나온다. 혹시 잊으신 건가 싶어 한 번 더 말씀드렸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지금 버무리고 있어요."
순간 놀랐다. 생채를 그때그때 바로 버무려서 내오신다니. 정성에 감탄했다. 뜻밖에 들어온 집이 이렇게 정성 가득한 맛집이었다니 운이 좋다.
"너무 잘 먹었어요. 유튜브에 꼭 올려 드릴게요."
"유튜브 하세요?"
"네."
칼국수를 먹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경비원 아저씨셨다.
"금방 다녀오신다고 하시고 이렇게 오래 주차하시면 곤란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금방 갈게요."
송구스러웠다. 얼른 먹고 나갔다.
주차비를 드렸다. 한 시간인데 두 시간 비용으로 드렸다.
아저씨가 돈을 돌려주신다.
"따뜻한 커피라도 사다 드리려고 했는데 편의점이 보이지 않아서 못 사 왔어요. 커피 사 드세요."
지인은 섬유근육통을 앓고 있다. 언제 통증이 올지 몰라 항상 긴장하고 비상사태다. 집까지 모셔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까운 지하철역에 세워줘."
"아니에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나는 좋은데 넌 힘들텐데, 너무 고마워."
지인이 조용히 속내를 털어놓았다.
"헤어지려니까 마음이 허하고 서글펐어. 이렇게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친절이란 게 참 신기하다.
돌고 돈다. 퍼지고 번져서 스며든다.
경비원 아저씨의 미소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나는 할머니 손에 핸드크림을 발랐다. 칼국수집주인은 생채를 그때그때 버물러서 정성을 다해 내 놓았다. 지인을 집까지 안전하게 모스댜 드렸다. 작은 친절과 배려가 차곡차곡 쌓여 하루가 되었다. 어제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오늘, 친절과 웃음 덕분에 행복을 맛보았다.
당신의 오늘은 어떤 친절로 채우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