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울수록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이유

[필사 463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48

by 서강

우리는 서로를 영원히 모를 권리가 있다

어느 늦은 밤, 오래된 사진첩을 넘기다 문득 멈춰 섰다. 사진 속 나는 부모님의 손을 꼭 잡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부모님이 내 세계의 전부라고 믿었고, 부모님 또한 나를 당신들의 분신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어른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순간조차, 우리는 서로에게 철저한 타인이었다는 사실을.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우리는 그 어떤 타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며, 다가가려 할수록 서로의 차이를 깨닫게 될 뿐이라고. 이 말은 절망이 아니라,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서늘한 축복이다.




가까울수록 가려지는 것들

코로나 이후 '거리두기'는 방역의 수단을 넘어 삶의 태도가 되었다. 산해진미도 매일 먹으면 미각을 마비시키듯, 사람 사이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영혼의 숨구멍이 막힌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상대의 영역으로 너무 깊숙이 침범하곤 한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보지 않아도 될 단점이 보이고, 알아야 할 본질은 오히려 뿌옇게 흐려진다.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진짜 이유는 평생 곁에 묶어두기 위함이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두 발로 대지를 딛고 설 수 있도록, 기꺼이 내 품을 내어주고 한 걸음 물러나 주기 위함이다.


장성한 자녀가 부모의 그늘 아래 너무 오래 머물면, 그 따뜻했던 사랑은 이내 서로를 갉아먹는 갈등의 씨앗이 된다. 혈연조차 이러한데, 하물며 타인과의 관계는 오죽할까.




안도감은 '떠남'에서 온다

명절에 자녀가 집에 오면 눈물 나게 반갑지만, 그들이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갈 때 더 반가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다. 각자에게 허락된 '자기만의 방'이 확보될 때 비로소 인간은 온전한 인격체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만나야 반갑고, 적당히 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안부가 궁금해진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무모한 노력을 멈추고 그 간격을 인정할 때, 역설적으로 진정한 소통은 시작된다. 한 발 뒤로 물러서야만 상대의 전체적인 얼굴이 보이고, 그 거리를 메우고 있는 내 마음의 진짜 모양도 선명해지는 법이다.




당신의 삶으로의 초대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혹시 그를 너무 잘 안다고 자부하거나, 혹은 그가 당신을 완벽히 이해해 주길 바라고 있지는 않은가.


오늘 하루는 그에게서 한 걸음만 물러나 보자. 상대를 이해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심연'을 가만히 응시해 보자. 그 빈 공간이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낙원이다.


당신은 오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얼마나 기꺼이 멀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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