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 보다 위험한 것은, 살지 않은 문장이다

[필사 468일]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53

by 서강

오후의 볕이 잘 드는 카페 창가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사람들은 흔히 이 장면을 보며 '여유'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이 한 잔의 커피에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액체의 온기가 아니다. 오전 내내 자판을 두드리며 문장과 사투를 벌였던 손가락의 뻐근함, 그리고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을 때 밀려온 안도감이 이 커피 맛의 8할을 결정한다.


땀 흘린 뒤의 휴식, 목마름 끝에 마시는 한 모금의 물, 허기진 배를 채우는 따뜻한 한 끼. 우리가 익히 아는 이 감각들은 모두 '결핍의 시간'을 통과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BC카드 광고의 "수고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시대를 관통한 이유는 단순하다. '떠남'이라는 행위보다 앞선 '수고'라는 실천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내가 실제로 스스로 실천하며, 그대로 살아본 생각만이 내게 가치가 있다"라고. 이 문장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우리의 지적 허영을 베어낸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남의 문장을 내 철학인 양 전시하며 살고 있는가. 읽기만 한 책, 듣기만 한 강의, 보기만 한 타인의 성공은 내 영혼에 아무런 자국도 남기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남이 먹는 성찬을 지켜보며 내 배가 부르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인생이라는 학교에 '청강생'은 없다. 모두가 자기 삶의 전공자로서 매 순간 경험이라는 수업료를 지불한다. 깨달음은 결코 매끈한 교과서 종이 위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진흙탕에 구르고, 무릎이 깨지고, 예상치 못한 비에 젖어본 뒤에야 우리는 비로소 '삶'이라는 단어의 진짜 뜻을 몸으로 번역해 낸다.


요즘 나는 내 속도로 걷는 이 시간이 참 좋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과 대화하는 일상. 남들이 말하는 거창한 성공이나 획일적인 워라밸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맞는 조화, 내 근육으로 버텨낸 일과 휴식의 리듬이 있을 뿐이다. 바쁘다는 생각조차 잠시 내려놓으면, 시간은 기다렸다는 듯 다시 내 곁으로 다가와 여유라는 선물을 건넨다.


이제 당신 차례다. 오늘 당신이 내뱉은 말 중, 당신이 직접 살아보고 건져 올린 문장은 몇 개인가? 남의 생각을 복제하며 사느라 정작 당신의 실천이 지워지지는 않았는가?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된 가짜 인생을 멈추고 싶다면, 지금 당장 당신의 손과 발을 움직여라.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좋다. 당신이 직접 살아낸 그 1분의 시간만이, 죽음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을 당신의 유일한 자산이 될 것이다.


내가 실제로 스스로 실천하며, 그대로 살아본 생각만이 내게 가치가 있다. - 헤르만 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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