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에서 엄마가 가르쳐준 사랑의 무게

줬으면 그만이지

by 서강

[필사 502일] 있다고 다 보여주지 말고 안다고 다 말하지 마라 /#11


"줬으면 그만이지."

엄마가 그 말을 처음 한 건 요양병원 침대 위에서였다.


집 없는 설움이 어떤 건지, 상상도 못하는 수모를 당하며 엄마는 몸으로 체험했다. 그래서 땅이 생기고 집터가 생기자, 망설이지 않았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거의 공짜로 땅을 내어주고 집을 짓고 살게 했다.


세월이 흘러 엄마가 오빠집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땅을 받은 사람도, 집을 지은 사람도. 단 한 번도. 거리도 있었지만 마음이란 걸 내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들이 밉고 원망스러웠다. 엄마 곁에 앉아 참다못해 따지듯 물었다.


"그렇게 베풀어도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는데,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어"


엄마는 잠깐 창밖을 보다가 말했다.

"줬으면 그만이지."


나는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무언가를 줄 때 우리는 대부분 작은 기대를 품는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알아봐 주는 눈빛, 혹은 언젠가 돌아올 무언가.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으면 조용히 섭섭해진다. 섭섭함이 쌓이면 "내가 왜 그랬을까"로 번진다. 주었던 마음마저 후회하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욕망하는 사랑도 좋지만, 욕망하지 않는 사랑은 더 좋다고.


주는 것 자체로 이미 완성된 사랑.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는 마음. 보상을 바라는 순간, 욕망이와 섭섭이가 손을 잡고 온다. 그 두 녀석이 오면, 줬던 기억이 상처로 바뀐다. 따뜻했던 마음이 청구서가 된다.


나는 오늘도 숨을 쉰다. 산소가 있는 덕분이다. 산소는 나에게 감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냥 있고, 나는 그냥 산다.


덕분에. 이 말을 자주 쓰기로 했다.


받은 것에 "덕분이"를 붙이고, 준 것엔 "줬으면 그만이지"를 붙이기로 했다. 보상은 주는 순간에 이미 받은 것이다. 마음이 움직였던 그 순간, 그것으로 충분하다.


욕망하지 않는 사랑은 가진 게 없어서 잃을 것도 없다. 그래서 오래간다.

엄마처럼, 베푼 덕분에 좋은 곳에 가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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