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겨우내 두터웠던 옷을 하나 둘 벗어던지기 시작하던 날, 아들의 청첩장을 받아 들었다. 추위를 견딘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는 4월, 품 안의 아이가 둥지를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언제 이렇게 자랐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뿌듯함과 먹먹함으로 채워진다.
예전 같지 않아서 혼주가 할 일이 간소하다. 청첩장을 돌리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꼭 보내야 할 곳, 애매한 곳, 안 보내면 서운해할 곳까지. 스몰 웨딩을 계획했지만, 아이들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산으로 들로 나들이 가기 좋은 봄날, 사람들의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으로 일찍 청첩장을 보내기로 했다.
소싯적부터 친구처럼 지낸, 남편의 오랜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조카 결혼식과 겹쳐서 어떡하지"미안함이 묻어난다. "괜찮아, 아들은 저녁 6시 예식이야"라고 하자,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주책스럽게 갑자기 목이 메어온다. "야, 네 전화받으니까 왜 이렇게 울컥하지?"라고 했더니, "그럼 실컷 울어"라는 친구의 말에 눈물샘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혼주 자리는 어떻게 할 거야"라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남편의 빈자리를 누군가로 채우고 싶지는 않아. 그날 외출 나와서 옆자리에 앉겠지"라고 했다. "내가 서줄까" 이 한마디에 함축된 의미를 알기에 고마움이 스며든다. 하지만, 그 자리는 영원히 아들 아빠의 자리이기에 그 누구라도 대체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들이 정한 관념의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
예상보다 많은 축하 인사를 받으며,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만학도 시절 함께 공부했던 동생의 배려 어린 제안, 총동문회 회장 이. 취임식에 참석해서 청첩장 돌리라고 한다.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불쑥 모임에 모습을 내민다는 것은 양심이 거부반응을 일으켜서 정중히 사양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머릿수만 채우는 허례허식이 아닌, 진심 어린 축복을 해줄 수 있는 지인과 친척 몇몇 분들만 초대해서 조용히 치르고 싶은 마음이 여전하기에,
한 것도 없는데, 몸과 마음이 지쳐 몸살이 났다. 복잡한 생각들이 마음을 짓누를 때면, 문득 돌아가신 엄마가 평소에 하던 말이 떠오른다. "자식은 둘이 낳아서 둘이 키워야 한다." 누구나 그러고 싶지만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막상 혼사를 앞두다 보니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가끔은 아주 가끔은 무너질 것 같은 마음을 다독이며, 담담함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외롭고 힘든 순간이 있다. 아들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며, 엄마 아빠가 못다 한 삶까지 백년해로를 넘어 2백 년 해로를 하기를 기도해 본다.
그 해, 나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봄은 다시 오고, 꽃은 피어나고, 삶은 계속된다.
p.s : 그동안 꽁꽁 싸매며 숨겨온 가정사 일부 베일을 벗겼습니다. 일면식은 없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작가님들의 진심 어린 축하가 우리 아이들의 앞날에 큰 힘이 될 것을 알기에, 마음껏 축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