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꿈속을 거니는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잠에 취한 목소리로 받은 전화는 서울에 있는 큰 공주였다. 시계를 힐끗 보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무슨 일일까, 가슴이 철렁했다.
"여보세요." "엄마, 자?"
"새벽 3시네, 자다 깼지, 왜 무슨 일 있어?"
"엄마, 괜찮아?"
"응 괜찮아. 왜?"
불안한 목소리로 딸이 말했다.
"꿈을 꿨는데 이빨이 빠졌어."
"윗니야, 아랫니야?"
"위에 어금니가 빠졌어."
"윗니는 손위 사람이 잘못되는 거라던데."
엄마한테 들은 말이 있어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엄마, 혹시 모르니 똘이, 신이랑, 하은이도 잘 자고 있는지 확인 좀 해봐."
전화를 끊고, 몽롱한 의식 속에서 막내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선 막내 옆에서 똘이와 신이가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내 발소리에 놀란 막내가 눈을 떴다.
"놀래라, 무슨 일이야?"
큰 공주에게서 온 전화 얘기를 전하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마음은 이미 25년 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데칼코마니처럼 겹쳐진 기억. 그때도 새벽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는 꿈을 꾸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얼마나 슬피 울었던지, 꿈인데도 잠꼬대처럼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왔다. 떨리는 손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 다행히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그때만 해도 엄마는 불교 신자였다.
"엄마, 예수 믿고 구원받아야 해. 아멘이라고 말해 알겠지?"
엄마는 한참을 괜찮다고만 말하고 절대 아멘을 하지 않다가, 딸의 눈물 섞인 목소리에 못 이겨 결국 "아멘"이라고 답했다. 엄마가 당장이라도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었던 것 같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 어떤 것일까?
그때는 딸의 마음이었고, 이제는 엄마의 마음으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하니 기분이 참 묘하다. 큰 공주의 마음이 어떨지 충분히 헤아려진다. 가족이란 이런 건가 보다. 아무리 떨어져 지내더라도 가장 먼저 챙기는 사이, 평소에는 무심한 척해도, 가장 살가운 사이. 때로는 비현실적인 꿈이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가족의 사랑이다. 새벽 세 시의 전화벨은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하는 작은 증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