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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나무다리

by 서강

오랜 단절 끝에 마주친 그 사람. 우리의 관계는 마치 끊어진 실타래 같다. 핸드폰번호도 바꾸고 잠수를 하다시피 두문불출이던 사람을 만나다니, 핸드폰 번호를 받은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어떤 희망의 불씨가 살며시 피어올랐다.


아침마다 그를 위해 확언을 했다. "그가 하는 일이 잘 풀려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보냈던 작은 소망들, 그 확언이 헛되지 않았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연락이 두절되어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주차장 앞에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그를 발견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도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반가웠다. 주차를 하고 다가가려는 순간, 내 마음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 찼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마도 분노와 배신감으로 화부터 냈겠지만, 분노 대신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그의 행동은 여전히 뻔뻔해 보였다. "사무실에 먼저 올라가 계세요"라는 말에 잠시 어이가 없어서 화를 낼 뻔했지만, 차분하게 대처했다. "같이 올라가셔서 얘기 좀 하시죠?라고, 그의 행동은 단순한 무시가 아니라 자기 방어의 또 다른 모습임을 알아차렸기에 가능했다.


차분하게 내 할 말을 전달하고, 연락처까지 받아냈다. 내 안의 분노 대신 이해와 공감이 자리 잡았다. 오히려 그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그 사람의 내면의 수준을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그와 같은 사람이 되기 싫었다. 단지, 제발 하고 있는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가득 안고 돌아섰다.


이 모든 것이 필사 덕분이다. 내면이 단단해져야 한다는 말의 참 뜻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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