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차이
생각이란 무엇일까? 입으로 하는 말, 글로 쓰는 글, 속으로 품는 생각? 세상이 주는 모든 희로애락은 결국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태산 같은 시련 앞에서도 잘 이겨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겨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좌절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생각의 차이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고 무게도 없다. 그러나 그 힘에 눌리면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무게를 지닌다. 때로는 우리 삶을 옥죄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첫아들의 혼사를 앞두고 우리 가족은 정말 행복하다. 온 가족이 한마음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다. 3월 말 조카 결혼식 참석 후 친정 오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 혼자서 큰 일을 준비하는 게 마음이 쓰였던 모양이다.
"사돈댁 혼주석이 빈다고 하던데, 내가 네 옆자리에 앉고 사돈댁 혼주석은 사촌 오빠 부부가 앉으면 좋겠는데 네 생각은 어때?"
오빠의 진심 어린 배려의 한마디가 평온했던 준비 과정에 파문을 일으켰다. 혼주석을 비워두는 것보다 누군가 앉는 게 좋지 않겠냐는 오빠의 제안은 선의에서 비롯됐지만, 집안의 의견을 양분시켰다. 내 입장은 이런 마음을 내준 오빠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며느리의 입장이다. 며느리에게 물었더니 "혼주석에 앉아주신다면 저는 너무 감사하죠"라고 했다.
그런데 친정 올케가 그건 예의가 아니라며 반대했다. 오빠는 "돈을 주고도 혼주석에 사람을 사기도 하는데, 집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혼주석을 비워두는 것보다 낫지 않느냐"라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사촌 올케가 독감으로 입원하게 됐다. 결국 친정 오빠 부부가 사돈 혼주석에 앉고, 사촌 오빠가 내 옆에 앉는 방안을 두고 의견을 모았다. 나는 오빠에게 올케도 그렇게 앉는다고 하면 찬성할 거라고 했는데, 예의를 따지던 올케는 흔쾌히 승낙했다. 예의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인지 아직도 의문 중이다.
하지만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플랜에 없던 혼주가 발생하면서 한복을 맞추고 메이크업을 준비하는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사촌 올케가 앉는다고 했을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친정 올케가 앉는다고 하는 순간부터 아들과 딸은 "굳이 필요 없는데 왜 서냐"며 "외삼촌만 사돈 쪽에 서고, 우리 쪽은 엄마만 서면 되지"라고 의견이 나뉘기 시작했다.
큰일 앞두면 항상 큰 소리가 난다더니, 예상에 없던 올케의 투입으로 평화로웠던 준비 과정에 균열이 생겼다. 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솔직히 나는 괜찮았다. 며느리 부모 자리에 누군가 앉아준다면 그저 감사할 뿐이었고, 추가 비용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돼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른 시선으로 봤다.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해준다고 생색내는 것도 보기 싫고, 예산에 없던 비용이 추가되는데 고마워하기는커녕 당연하게 생각할 게 뻔해서 화가 난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이 돈에 인색하지 않은데, 결국은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생색을 낼 외숙모의 태도가 싫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우리 아이들 앞날을 축복해 줄 사람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보다 손위 사람인 오빠의 제안이고, 지금까지 오빠 말이 틀린 적은 없었기 때문에 순수히 받아들인 것이다. 서로 입장 차이로 막내와 언쟁이 벌어졌고 잠시 휴전 상태가 됐다. 우리는 서로 편지를 써서 마음을 전하며 화해했다. 살다 보니 참 입장이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같은 상황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내 마음이 편한 것이 최고다. 내 마음은 사실 불편하지 않다. 사돈 혼주석이 채워진 것으로 만족한다. 적어도 우리 며느리가 덜 외로울 테니까,
이런 마음을 내어준 오빠에게 고맙고, 며느리도 이 마음을 잘 받아줘서 더욱 고맙다. 생각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 누군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내 마음이 편한 선택을 하는 것이 결국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열쇠가 아닐까,
필사를 통해 편하지 않았던 내 마음에 단비를 내려준 느낌이다. 책을 읽고 필사하는 맛은 미슐랭보다 더 특별하고 맛있다. 생각의 무게는 때로 무겁지만, 그 무게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더 중요하다. 결국 삶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렸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