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모임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꼼짝할 수가 없다. 온몸에서 맥이 빠져나가는 기분. 링거를 맞아도 회복이 안된다. 왜 이럴까? 원인을 찾아 헤맨다. 모임에서 날아든 말들이 가시처럼 박혀 있다. 막말인 듯 아닌 듯한 문장들. 상대는 자신의 말이 법이라도 된 양 뇌를 거치지 않고 쏟아낸다.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이미 공기 중에 흩어진 말들은 다시 담을 수 없었다. 나도 한 마디쯤 던지고 싶었지만, 올라온 말을 삼키는 순간, 목 안이 뜨겁게 조여왔다. 말은 삼켰는데, 감정은 목 아래 어디쯤 걸려 내려가지도, 올라오지도 않는다. 말(語0에 체한 건지, 마음이 멎은 건지 구분조차 어렵다.
개인 톡에 하고 싶은 말을 적었다 지우기를 수십 번. 울화병이 이렇게 생기는 모양이다. 가슴 한편이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듯 힘겹다.
답답한 마음을 식히려고 창문을 열자, 밤공기가 얼굴을 훑고 지나간다.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마치 숨겨진 빛줄기처럼 깨달음 하나가 스며든다.
“풀은 풀이고, 나무는 나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누군가를 바꾸려 했던 모든 시도는 결국 내 마음을 묶는 족쇄였다.
사람은 마음을 내기 전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또다시 그를 바꾸려다가 결국 침묵했고, 꺼내지 못한 말들이 가슴에 걸려 체기가 됐다.
아이가 첫걸음을 떼며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듯, 인간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부딪히고 흔들리며 비로소 사람 사이의 거리를 배운다. 그것이 마음의 성장통이다. 상대를 움직이려 애쓰는 대신, 내 마음의 결을 조용히 고쳐 앉힌다. 말없이 물러나고, 조용히 흘러가며, 스스로에게 묻는 법을 배워간다. 바람의 속도와 방향 따라 나뭇잎이 흔들리듯 나답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마음을 고쳐 먹으니 빠졌던 맥이 서서히 살아난다. 창가에 부서지는 햇살처럼, 이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들이 있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누군가의 말에 상처받고 무너질 때마다 되새긴다. 때론 강물처럼 바위에 부딪히더라도 제 길을 가는 법을 배운다. 사람은 바꿀 수 없지만, 내 마음은 바꿀 수 있다. 성장통을 겪은 후 찾은 진정한 성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