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을 글로 남긴다
비는 그냥 내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겐 유년의 냄새고, 누군가에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후다.
“비에 젖었다.” 이 한 문장만 봐서는 비의 양을 가늠할 수 없다. 옷깃이 축축한지,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지, 발끝까지 스며들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반면 “비에 흠뻑 젖었다”라고 쓰면, 상황이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고, 누군가는 우산을 접고 일부러 비를 맞았을 것이다. 그 사이에 묻어 있는 감정이, 문장을 통해 고스란히 스며든다.
이 차이가 바로 수필과 칼럼, 자기 계발서를 가른다. 칼럼이나 자기 계발서에서는 사실이 중요하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가. 논리로 설득하고, 정보로 안내한다. 구체적이고 정확하면 된다. 감정을 포장하지 않아도, 독자는 그 목적을 이해한다.
하지만 수필은 다르다. 사실보다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다. ‘전하고 싶은 생각’을 ‘떠오른 장면’에서 나타낸다 그 장면을 읽은 누군가가 자기 마음을 덧칠할 수 있을 만큼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필은, 구체적이고 정확하면서도, 그 속에 반드시 ‘느낌’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 느낌은 모호해서는 안 된다.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아도, 독자가 그 장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이 칼럼이나 자기 계발서와 가장 다른 점이다.
수필은 읽히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는 것이다. 누군가의 경험이 내 안의 기억을 건드릴 때, 그 문장은 더 이상 글이 아니라 내 이야기처럼 남는다.
그래서 나는,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자주 멈춘다. ‘이 문장은 정확한가?’를 넘어서, ‘이 문장은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정확한 말은 이해를 남기고, 느낌이 살아 있는 말은 기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