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박복한 년, 내 엄마

엄마의 첫 번째 성(城)

by 서강


그 시절의 기억은 희미하다. 아니, 사실 거의 없다. 너무 어려서 그 집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기억은 없어도, 훗날 엄마의 입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우리는 남의 집 셋방에서 살았다. 부엌은 함께 쓰고, 화장실은 마당 끝에 있었다. 주인집 아들이랑 우리 오빠가 동갑이라 종종 같이 어울려 놀았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나 보다. 주인집 아저씨는 걸핏하면 엄마를 무시했다.


어린 오빠에게도 서슴없이 말했다고 한다. “거지새끼가 어딜 기어들어와.” 그 말이 엄마의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는 걸 나는 나중에서야 알았다. 엄마는 말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그날 밤, 빨래를 짜던 손등에서 핏눈물만 흘렀다는 이야기만 오래도록 들려주셨다.


그날 이후, 엄마는 이를 악물었다. “꼭 내 집을 마련해야겠다. 내 새끼들이 두 번 다시는 이런 수모당하지 않게 할 거다.”


쥐가 나오는 허름한 셋방이었지만 주인의 텃새는 하늘을 찔렀고, 엄마는 덕분에 목표가 생겼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장터로 나가고, 쥐포를 손질하고, 아이 셋을 키우며 묵묵히 살아냈다.


엄마는 참는 법을 배웠고, 참으면서도 꺾이지 않는 법을 아는 분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어디서 그런 깡다구가 나왔는지 모성애는 정말 대단하다. 엄마는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된 작은 집을 마련했다.


낡고 좁지만 엄마에게 첫 번째 성(城)이었다.

엄마가 왜 그렇게 집 없는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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