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대로 살아지고, 사는 대로 써진다

by 서강


말의 향기를 따라 걷는 하루


아들과 함께 사무실에 있었다. 늘 그렇듯, 가끔씩 길을 묻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오늘도 한 어르신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셨다.

"보훈청 어딥니까?" 짧고 단호한 질문. 나는 익숙하게 길을 알려드렸다. 그분은 "아." 하고는 말없이 돌아서 나가셨다.


아들이 중얼거렸다. "변함이 없네. 고맙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아 하고 가시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저분은 '아'라는 말이 그분 나름의 고마움 표현이었을지도 몰라." 그리고 덧붙였다. "'실례합니다. 길 좀 여쭤봐도 될까요?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긴 하네."


그 순간, 마음속에 조용한 울림이 일었다. 그분이 떠난 자리에서조차, 나는 다정한 말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 아침 필사한 문장이 떠올랐다. 말에도 향기가 있다. 귀한 언어와 귀하지 않은 언어 사이, 나는 매일 그 경계에 선다. 말이라고 다 같은 말은 아니구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나오는 말이 진짜 나의 품격이 아닐까.


나는 오늘, 아들에게 말로 가르치기보다 한 장면을 보여주었다. 말은 때로 침묵보다 큰 울림을 만들기도 하고, 침묵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기도 하니까. 이 장면이 언젠가, 아들의 마음 한 귀퉁이에 따뜻한 향기로 남기를.


그 향기가 아들을 말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 말의 태도로 꾸준히 잘 나가는 사람으로 이끌어주기를.

필사한 문장들이 삶 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했다. 말의 태도는, 결국 삶의 태도니까.

“나는 이제, 쓰는 대로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살아낸 만큼만, 정직하게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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