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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서평

by 서강


저자 소개

최은영, 1984년 강원도 원주 출생.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후 글쓰기 교사로 일하며 「쇼코의 미소」로 2013년 등단.


‘관계 속에서 상처 입은 존재’를 세밀하고 조용한 문장으로 포착해 내는 작가로 알려졌다.

『내게 무해한 사람』,『쇼코의 미소』등의 단편집에서 이어진 상처의 서사들은, 장편소설 『밝은 밤』(2021)을 통해 보다 깊고, 더 먼 세대의 고통으로 확장되었다.


오랜 시간 ‘인간의 상처와 관계’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글을 써왔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단지 작가로서의 작업이 아니라, 한 인간이 부서진 채로도 다시 말하려는 시도였음을 보여준다.


『밝은 밤』은 여성 4대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전쟁, 계급, 가족, 젠더, 침묵, 관계 등 다양한 삶의 무게를 조용히 들춰낸다. “말하지 못한 이들의 계보학”이자, “기억의 밤을 밝히는 은은한 등불”이다.


제목에 함축된 의미

『밝은 밤』이라는 모순적인 제목 조합은 곧 소설 전체의 은유적 집약이다. 밤은 어둠이고, 어둠은 기억이자 고통이다. 그러나 그 어둠을 직시하고 말할 때, 비로소 우리는 그 밤을 밝힌다. 작가는 제목을 통해 “말하지 못한 고통의 기억”을 밝히는 작업임을 예고한다.


인물 계보 정리

정선 (증조모)

└── 영옥 (외할머니)

└── 미선 (지연의 엄마)

└── 지연 (주인공)

정선: 백정 출신. 멸시와 배제로 점철된 시대의 피해자. 숨죽여 살아온 존재.


영옥: 과거에 갇힌 채 살아온 어머니. 피난길에서 존재 자체를 부정당했던 기억의 소유자.


미선: ‘정상 가족’이라는 틀에 묶여 살아온 세대. 억눌림과 침묵의 전수자.


지연: 이혼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희령으로 돌아온 인물. 상처를 돌이켜보며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한다.


줄거리 요약

여성 네 세대의 상처와 기억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온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차마 말하지 못했고, 견디고, 버티고, 누군가를 위해 스스로를 지워냈다.


주인공 ‘지연’은 이혼 후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아 있는 ‘희령’으로 내려온다. 그곳에서 외할머니 ‘영옥’과 재회하고, 그녀로부터 증조모 ‘정선’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백정 출신으로 멸시받았던 정선의 생, 피난길에 자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영옥, 가부장적 테두리 속에서 침묵으로 버텼던 어머니 ‘은주’, 그리고 이 모든 기억을 받아 적는 지연.


네 명의 여성 계보를 따라 삶, 슬픔, 침묵, 회복을 조명한다. 구조는 시간의 직선이 아니라 상처의 나선에 가깝다. 정선 → 영옥 → 은주 → 지연으로 이어지는 가족 서사는 단순한 가계도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각 세대의 여성은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모두 침묵과 체념을 공통어로 공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연은 이 이야기들을 직면하고,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비로소 상처를 이야기로 바꾸는 주체가 된다.


비판적 고찰

1. 시제의 혼란

작품 초반, 과거와 현재 시제가 예고 없이 전환되며 서사의 이음매가 매끄럽지 않다. 정서 중심의 문장이 시점을 넘나들며 문학적 리듬은 풍부하지만, 몰입감과 흐름이 끊기는 순간이 존재한다.


2. 정서 중심의 서사 구조

‘ 기억되고 말해지는’ 방식이 사건의 긴장감보다는 감정의 결을 따라 전개된다. 성찰의 깊이를 더하지만, 서사의 흡인력은 약화될 수 있다.


3. 남성 인물 구성의 단조로움 – 단, 새비 아저씨는 예외

대부분의 남성은 침묵하거나 소극적이며, 비가시적 존재로 처리된다. 그러나 새비 아저씨는 존엄을 지켜주는 인간적 태도를 보여주는 유일한 남성 인물로, 작품 속 희미한 따뜻함과 가능성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주목할 장면 1

“우리는 이런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다.” 피난길에서 별무리를 본 외할머니 영옥의 내면 독백이다. 존재의 존엄마저 박탈당한 전쟁 속 인간의 비극을 함축한다. 아름다움을 감각할 권리조차 부정당할 때, 인간은 스스로를 짐승보다 낮은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인간성의 파괴에 대한극한 묘사이자, 이 소설의 정서적 출발점이다.


주목할 장면 2

“숨 쉴 구멍이었던 존재가 일이 되고, 나의 가능성이 한계가 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인공 지연이 자신의 전공인 ‘천문학’을 이야기하며 고백한 문장이다.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었고, 결국 ‘나’라는 존재의 여유와 가능성마저 잠식했다. 현대인의 자아 붕괴와 직업적 소외를 상징한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는 순간 나를 사라지게 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주목할 장면 3

“그녀는 그 나이의 자신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붙들고 살았던 것 같다.” 주인공 지연이 증조모 정선을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누구나 벗어나지 못한 어린 날의 상처를 품고 산다. ‘지금의 내가 아닌, 과거의 나’에 갇힌 인간 존재를 말하며, 세대를 넘어 상처가 전이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기억의 연대기’가 아니라 고통의 혈통서이기도 하다.


총평

『밝은 밤』은 상처의 말하기를 통해 치유를 실현하는 작품이다. 말하지 못했던, 말할 수 없었던 슬픔들을 지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다시 불러내고, 직면하고, 꺼내어 말하게 한다.

비극을 과장하지 않고, 희망을 남발하지 않으며, 정직한 슬픔으로 독자의 마음을 씻어 햇살에 널어 말린다.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말하지 못한 기억이 상처로 마음에 남아 있는 분, 세대의 서사와 침묵의 전승에 관심이 있는 독자, 조용하지만 깊은 감정선의 문장을 좋아하는 사람, 치유보다는 ‘이해’를 통해 위로받고 싶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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