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박복한 년, 내 엄마

지긋지긋한 집을 떠나

by 서강


연탄가스 사건 이후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 집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
이 집만 보면 숨이 막힌다고. 그 말엔 무너져가는 마음과 되살아나는 악몽이 함께 얹혀 있었다. 기껏 비 오지 않는 집이라 기뻐했던 그 집. 계단은 할머니를 다치게 했고, 가스는 가족을 삼킬 뻔했다.


슬픔이 잦아들 틈도 없이 사건이 덮쳤고, 엄마는 마침내 결단했다.

“떠나자.”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본에 계신 큰아버지가 땅을 알아보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구해주셨다. 아버지가 못한 엄마의 앞길을 손수 닦아주셨다. 아버지가 생전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지만, 엄마가 시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공덕을 큰아버지는 외면하지 않으셨다.


“제수씨가 동생이 바람을 피워도, 우리 엄마 끝까지 모셨잖아요. 정말 고맙습니다.” 큰아버지는 엄마 곁에 가장 큰 울타리를 만들어주셨다.


그렇게 우리는 대궐 같았던 그 집에서 벗어났다. 몸과 마음을 짓누르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 그곳에서 마지막 짐을 들고 나올 때 엄마는 담벼락을 한 번 쓰다듬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새로 이사한 집은 햇살이 잘 들고, 마당이 넓은 대청마루가 있는 정남향의 집이었다. 마루에 앉아 찬 바람을 느끼며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좀 숨이 쉬어지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엄마는 비로소 자신의 명의로 된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도대체 그전까지의 시간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에게 ‘사람답게’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멀리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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