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박복한 년, 내 엄마

울음이 살린 사람들

by 서강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집안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엄마는 말을 아꼈고, 할머니는 자리에 누워 계셨다. 막내는 돌도 되지 않은 갓난아이였고, 우리 모두는 그 집 안에 말없는 고요 속에 갇혀 있었다.


그날도 추운 겨울이었다. 창밖엔 바람이 불고, 연탄불은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할머니는 그 전날, 2층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다쳤다. 움직이지 못했고, 엄마는 그분 곁을 지키고 있었다. 집안에는 무거운 공기가 맴돌았다. 슬픔과 피로와 어지러움이 서서히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게 연탄가스 때문이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새벽, 그 적막을 깨우듯 갓난쟁이 동생이 울기 시작했다. 돌도 안 된 그 작은 아이가 있는 힘껏 울었다. 생명을 향한 신호였다. 그 울음소리에 아랫채에 살던 분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고 문을 열었다. 방안은 서로 엉켜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분은 우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다.


덕분에 우리는 모두 살아났다. 얼마나 아찔한 순간이었는지, 초등학교 2학년 꼬꼬마이던 내 기억 속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할머니는 연탄가스를 가장 많이 마셨다. 계단 사고에 이어 이 일까지 겹쳐 몸이 한동안 더 악화되었다.


엄마는 그날 이후 말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람 살렸다.” 그 한마디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어쩌면 막내는 이 세상에 우릴 살리기 위해 먼저 울어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집은 따뜻했지만, 그 따뜻함은 생명을 위협하는 온기였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아무도 깊게 울지도 못했다. 그렇게 생명을 연장한 덕분에 지금 이 시간 이 글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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