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평범한 겨울방학이었다. 오빠와 나는 남해 이모 집에 가 있었다. 함박눈이 소복이 쌓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 엄마가 울고 있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단지 숨소리만 전화를 타고 들려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이모와 함께 삼천포 집에 도착한 오빠와 나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비명을 지르는 것도 아니었고 말없이 울고만 있었다. 입을 다문 채 흐느끼는 엄마. 나는 그 모습이 더 무서웠다.
성인이 되어서야 들은 이야기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돌아오고 싶어 했단다. 하지만 첩은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삼천포 노산공원으로 갔다. 동서남북, 네 방향을 향해 절을 하고 농약을 마셨다. 그 모습을 우연히 공원을 지나던 기자가 발견했고 119가 불려졌지만 이미 늦었다고 했다.
나는 생각한다. 살아생전, 우리를 외면하고 다른 여인과 살림을 차렸던 사람이 왜 죽을 때는 엄마를 향해 절을 했을까. 용서받고 싶었을까. 가엾어 보였던 걸까. 아니면 자기 인생마저 누군가의 책임으로 넘기고 싶었던 걸까. 나는 그 죽음을 쉽게 슬퍼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엄마의 삶은 정말 빈껍데기가 되었다. 막내 동생은 돌도 지나지 않았고, 할머니는 다리를 다친 상태였다. 엄마는 자꾸 헛것이 보인다고 했다. 문득문득, 아버지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정을 떼려고 그런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엄마는 무서워서 집에 있는 문처럼 생긴 것은 모두 걸어 잠갔다. 그날 밤 온 가족이 연탄가스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