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이상적인 곳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조차 나는 이직을 열심히 준비했다. 저번과는 다른 이유였다. 현재 있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가 아닌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공부를 하는 일상을 반복하였다. 친구들도, 가족들도 잘 보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어릴 때, 조금이라도 빨리 더 좋은 타이틀을 목에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해외 기업에 이력서를 넣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부터 우버, 트위터, 스냅챗까지 그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미국이나 캐나다에 지사가 있는 곳이라면 계속해서 이력서를 써냈고, 서류부터 수많은 낙방을 맛보았다. 이전에 대학생 때 매번 합격하던 높은 승률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그 때문인지 나는 더욱더 초조해졌고, 더욱더 열심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 아마존에서 합격 연락을 받게 되었고 폰 스크리닝부터 1차 인터뷰, 마지막 네 개로 이루어진 최종 인터뷰까지 흘러가게 되었다.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다. 준비한 지 6개월 만에 이뤄낸 믿지 못할 결과였다. 그 이후로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정신을 못 차린 채 모든 과정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다. 비자를 발급하고, 해외 운전면허를 발급하고, 가지고 있던 짐을 정리하고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는 것까지.
주변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자랑스러워했다. 주위에 나 같은 사람은 또 없다고 치켜세워주었다. 누군가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것은 썩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루빨리 떠나가고 싶었다. 내 실력을 내 손으로 증명해 내었고, 해외 커리어를 쌓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누구나 존경할만한 직장인이 될 수 있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능한 빠른 입사 날짜를 잡았다. 비자 발급이 오래 걸려 가장 빠른 날짜도 연봉 협상으로부터 다섯 달 후였다.
그 짧지만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속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젊은 나이에 그런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큰 축복일 것이라고, 누구는 부럽다고, 누구는 자신은 한국을 절대 떠나갈 수 없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다. 속으로는 겁쟁이의 변명일 뿐이라고 누군가의 신념을 거만한 태도로 바라보고 있었다.
네 달, 세 달, 어느덧 떠나기까지 두 달이 채 안 남았다. 그때부터였나. 무언가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기 시작했다. 막상 떠나는 시간이 다가오니 기쁘지 않았고, 내가 지금껏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퇴근 후 강아지와 즐기는 여유로운 산책, 동료들과의 즐거운 대화 시간,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 푸는 회포,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젊은 날의 추억까지. 그 무렵의 나는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누구보다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내가 겁쟁이라고 비웃던 그 마음은, 사실은 현재 자신의 삶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인생에 있어 가장 고민을 깊게 한 시기였다. 떠나야 하는지, 남아야 하는지, 머릿속이 복잡해 글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생각들을 끄집어내기 위해서였다. 생각을 쭉 나열해보고 나니, 외국에 나가게 되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커리어와 명예, 조금 더 높은 연봉이었다. 한국에 남게 되면 지킬 수 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이었다. 무엇보다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나에게 이 것은 누구와 같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였다.
한 달을 남겨두고 아마존에는 오퍼를 거절하겠다는 연락을 취했다. 내 일상은 전혀 달라진 게 없었다. 여전히 회사로 출근하고, 연인을 만나고, 가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낸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여태껏 써왔던 언어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가고 싶은 곳을 눈을 감고도 찾아간다.
하지만 내 인생은 이때를 기준으로 180도 바뀌게 되었다. 귀찮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일상의 모든 것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이고, 그 소중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더 이상 커리어와 돈, 남보다 좋은 회사, 높은 명예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더 행복하게 보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아름다운 순간으로 추억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나의 다음 목표가 되었다.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할 때서야 그것들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이직을 알아보지 않는다. 좋은 문화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하는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유저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내년엔 또 어떤 기능을 도입하고, 고도화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계획한다. 그 순간에도 누군가는 회사에 불평을 가지고, 이직을 하며 떠나가기도 한다. 그것은 절대 틀린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각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다를 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