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완벽했다. 좋은 문화와 좋은 사람들,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만족스러운 연봉까지. 하지만 가슴속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작은 구멍처럼 보이지만 속은 뻥 뚫려 있는 총알 자국처럼. 내 커리어는 누구보다 뛰어나야 했고 모두가 나를 부러워해야 했다. 나는 남들이 가지 못하는 길을 가야 했고 얻지 못하는 것을 가져야 했다. 이 행복은 나에겐 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함을 내밀었을 때, 저 거기 알아요, 라며 너스레를 떠는 반응이 아닌,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런 반응을 바랐다.
이곳을 좋은 발판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배울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배우면서 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날개를 숨기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언젠가, 아니 빠른 시일 내에 해외의 빅테크라고 불리는 구글, 아마존 같은 세계적인 기업에서 일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래, 그때 내 목표는 더 좋은 회사의 사원증을 목에 거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의 가치를 높이고, 나의 실력을 증명한다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고 여겼다. 잠시 거쳐가는, 긴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들린 작지만 편안한 휴게소 같은 곳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내가 도착할 곳은 훨씬 더 멋진, 반짝이며 빛 나는 도시일 것이라는 꿈을 꾸면서 말이다.
이래서 유년기의 경험이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을까. 사회 초년생 때 별 일을 다 겪은 나에게 회사는 소중한 곳이 아닌, 서로 어떻게든 뽑아 먹고 이용을 해야 하는 곳, 잔인한 정글 같은 곳이라고 각인되었다. 이번에도 같은 상처를 받기 전에, 사춘기 소년처럼 먼저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있던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네버랜드를 상상하며 꿈을 꾸던 것이다.
웃으며 다가오는 동료들에게 나는 가식적인 미소로 화답했고, 언제 어떻게 숨겨진 본심을 드러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작은 칼날을 갈고 있던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이직이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었고, 막 떠나온 나는, 또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 해본 것은, 두 번째에 훨씬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던가. 어딘가를 떠나는 것은 나에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 있었다. 어렵게 챙겨 온 짐 가방에서 내 물건들을 완전히 꺼내지 못하고 있던 채였다.
그래서 나는 이직해 오자마자 또 이직 준비를 했다.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그 강박증 때문이었다. 더 이상 받을 상처를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처음 새겨진 그 흉터 때문이었다. 어쩌면 매정한 세상 때문이었다. 사실은 주위를 보지 못했던 나 때문이었다.